이지항(스포츠과학부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캠브리지 대학의 신임교수이며 본인의 절친한 연구 동료인 Daniel Wolpert는 항상 자신을 Motor Chauvinist라고 소개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능력들 중 어느 한 가지 놀랍지 않은 것이 없지만 ‘움직임이야 말로 우리가 외부 환경과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고 움직임이 없으면 인간은 풀, 나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그의 과격한 주장을 런던의 한 어두컴컴한 선술집에서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득도를 한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일까? 물론 인지, 감정들과 같이 움직임을 야기 시키는 많은 요인들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결국 입과 혀를 움직여 말을 하건, 표정을 찡그리건, 글을 쓰건 외부 세계에 우리가 가진 생각들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같은 정신 활동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주장이다.

인간과 움직임이라는 출발점과 종착점 사이에 서있는 것이 스포츠과학이라고 정의 한다면 그의 이 같은 주장은 비록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스포츠과학 전공자들이 가질 수 있는 학문적 정체성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실제의 연구 주제는 다양하지만 스포츠과학의 기저(基底)에는 인간과 움직임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스포츠과학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역인 것이다.

운동제어는 우리의 움직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효과적으로 수행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어떻게 보면 인간과 움직임이라는 스포츠과학의 화두를 가장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야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철학적 고찰들을 차치한다면 (당시에는 이론의 실제적 검증이 힘들었다) 운동제어는 비교적 새로운 학문 분야라고 여겨지고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는 스포츠심리학의 하위 학문 분야로 여겨져 왔지만 근대에 이르러서 독자적인 영역으로 재평가 되었으며, 이 같은 최근의 급격한 발달은 생리학, 인지 심리학과 같은 여러 연계 학문의 약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이 여러 가지 정보를 처리하고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설명 하자면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이 중추 신경계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너무 간단한 추론 같지만 인간의 두뇌를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이제는 차츰 인간의 뇌가 우리에게 그 속셈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신경과학(Neuroscience)라는 지붕 아래에서 학제간의 구분조차 허물어뜨리고 있다.

근래 들어 학문의 성취도가 어느 유명한 학술지에 연구 결과가 게재 되는 가로 평가 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 대중들이 『Nature』나 『Science』정도의 학술지 이름에 익숙해진 것도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다. 개인적으로 별로 찬성하는 현상은 아니지만 이미 이 같은 평가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스포츠과학에서 근래 들어 정기적으로 『Nature』나 『Science』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분야는 오직 운동제어라는 사실에 학생들이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물론 이는 운동제어 연구자가 스포츠과학이라는 연못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큰 학제 간 교류의 물결에 뛰어들었을 경우에 한정 된다. 아직도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이기에 차지할 수 있는 파이는 많이 남아있으며 앞서 강조 했듯이 인간의 움직임에 관한 연구는 스포츠과학의 뿌리이기도 하다. 후배 연구자들이 거센 물결에 뛰어들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