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선생 추모전집 발간 이뤄져

기자명 박소영 기자 (zziccu@skku.edu)

지난 23일, 쌀 협상 비준안의 국회 통과로 내년부터 수입쌀이 우리의 밥상에 오르게 됐다. 본격적으로 쌀 개방이 시작되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농촌은 더욱 가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 이처럼 세계화는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과연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데 관심을 가졌던 경제학은 존재하는가? 이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1978년, 박현채 선생은 ‘민족경제론’을 출간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수출지향적 경제 정책과 외국자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경제 발전에 있어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꿰뚫어 봤다. 그리고 국가 단위의 계획된 민족 경제를 구축해 대외 의존적인 경제 형태가 아닌 자립 경제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성장 위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대항 담론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80년대 말까지 진보 진영에서 제기한 한국의 사회 발전을 위한 대안 체계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 성장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룸에 따라 박정희 모델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민족경제론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계획 경제의 한계가 드러났으며 민족경제론에서 제기한 자립 경제 개념은 오늘날의 세계 경제 체제 아래에서 작동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한신대 정건화 교수는 “민족경제론은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기에 자립 경제의 개념을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차원에까지 확대하고 전 세계적인 교류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민족경제론의 현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MF이후 경제가 양극화되면서 재벌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했던 것에 비해 민중의 생활은 비정규직 증가 등의 이유로 더욱 어려워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학자들은 ‘민중적, 민족적 관점에서 경제 이론을 주창했던 박현채 선생이라면 어떤 대안을 내 놓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민족경제론의 재조명 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 한국사회과학연구소에서 민족경제론을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한 대안들이 ‘개방적 민족경제론’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돼 왔다. △재벌에 대한 규제 강화 △노동조합의 경영 참가 △동북아시아 차원의 국제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 △지역균형발전 등 개방적 민족경제론의 영향을 받은 주장들이 경제 정책으로, 한편으론 시민 단체의 운동으로 사회에 반영되고 있다.

올해로 박현채 선생 사망 10주기를 맞아 선생의 추모 문집·전집이 발간되면서 그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민중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묻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추모 문집과 전집을 발간하게 됐다”며 “박현채 선생의 논문은 현실에 대한 발언이자 시대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했다.

민족경제론은 민중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봄으로써 서민 대중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그 주안점을 두었다. 정 교수는 “한국 경제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중소기업, 노동자, 농민의 생활이 악화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지금 필요로 하는 해답을 제시해 주는 실천성이 우리가 민족경제론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정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