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독립기념관 관장 김상웅 씨

기자명 손동한 기자 (sohndh@skku.edu)

조선 역사 5백년 동안 가장 역동적인 시대에 참선비의 모습을 보여준 심산 김창숙 선생(이하:심산 선생). 그는 올곧은 정신으로 △반외세 △반분단 △반독재 투쟁의 중심에 있던 애국지사였다. 김구, 신채호 등 민족주의자들의 평전을 다수 펴낸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씨가 이번엔 『심산 김창숙 평전』을 펴냈다. 그를 만나 심산 선생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심산 선생은 일제 강점기 및 3·1운동 때부터 이승만 독재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살아온 증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1,2차 유림단사건의 중심에 있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을 했다. 또한 해방이후 친일파 소국으로 변질 돼 있던 전통 민족사학인 성균관을 되찾아 유학대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렇듯 심산 선생은 역동의 시기를 몸소 겪은 선비이자 지식인,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최근 참된 민족의 선각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그를 재평가하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

■ 평전에서 심산 선생을 ‘한국의 마지막 선비’라 칭한 까닭은?
진짜 선비는 기본적으로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또한 나라가 평탄할 때는 학문을 발전시키며 제자를 양성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붓 대신 칼을 차고 싸워야 한다. 심산 선생 역시 일제 강점기에 유림단사건 등을 주도하며 독립운동을 이끌고 해방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적극적 행동으로 칼을 찬 선비이자 언행일치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선비상을 오늘날 무조건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심산 선생은 조선의 과도기적 시기에 존재한 한국의 마지막 선비라 생각했다.

■ 다른 평전과 달리 책 곳곳에 심산 선생의 시를 많이 넣었다. 그 이유는?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항상 올곧은 소리만 해온 심산 선생의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다. 때문에 정서가 풍부하지 않은 사람은 쓸 수 없는 시를 생각했다. 심산 선생은 많은 시를 남겼는데 이를 통해 의로운 사람이면서도 스스로의 서정세계, 내면세계를 탐구하며 고뇌하는 인간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 성균관대학교(이하:성대)에서 진행 중인 심산 선생 관련 활동을 평가한다면
성대 학생들에게는 심산 선생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대 학생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 말보다는 행동을 선택하는 용기로 요약되는 ‘심산 정신’을 시대에 맞게 변형시켰으면 한다. 매년 열리는 연극과 글쓰기도 이런 활동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심산 선생의 삶을 요약하는 피상적인 활동을 넘어 심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그의 △사상 △애국심 △철학 등을 현대화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성대만의 학풍으로 발전시켰으면 한다.

■ 평전을 쓰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평전은 한 위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다. 단지 인물의 일대기만 서술하면 위인의 위대성만 강조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평전을 쓸 때 한 인물의 위대성만을 찾아 미화로 일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을 고려한다. 예를 들어, 백범 김구 선생과 중국 처녀 사이의 스캔들이나 한용운 선생의 미녀 보살과 미담 등이다. 평소 존엄한 존재로만 여겨진 위인의 사뭇 다른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의 인간적이며 진실된 모습을 조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심산 사상이 오늘날엔 어떤 의미인가?
최근 민주화가 이룩되고 국민 경제가 나아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올바름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가치관이 혼탁해지고 있다. 이는 나라가 평안한 시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봄과 여름 같이 온 산천이 항상 푸름만 간직한 것은 아니다. 언제 국난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성인과 지도자들이 선각자들의 삶을 배우고 후진들에게 전수해 겨울에도 송죽과 같은 푸름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심산  선생의 선비로서 지킨 여러 사상들도 이런 지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