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준영 기자 (hispider@skku.edu)

때는 2004년, 난데없이 근엄한 표정의 선생님 세 분이 교실로 들이닥쳤다. 기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였다. 당시 우리 반은 EBS 특강을 듣고 있었다. 모든 학생들의 눈은 교실 앞문으로 향했다. 선생님들은 흘러나오는 인터넷 강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탁 앞에 서서 외쳤다.

“지금부터 두발 단속을 하겠다” 선생님 중 우락부락 하던 분은 머리가 길어 보이는 어떤 여학생 뒤로 다가갔다. “머리가 참 기네”

설마. 그러나 설마가 정말 사람을 잡아버렸다. 그분은 그 여학생의 뒷머리를 손으로 움켜쥐더니 뒤로 힘차게 잡아당겼다. 그 여학생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고 기자의 얼굴은 분노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왜 두발 규제를 하시는 겁니까?! 공부와 두발과의 관계를 말해주십시오!” 기자는 안면 몰수하고 대들었다. 그러나 돌아온 차가운 한마디. “다른 학교로 전학 가 그럼” “그러죠, 제가 나가죠”

기자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친구들은 기자를 쳐다봤다. 선생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가위를 들이댔다. 학생들은 그들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역사를 헛배운 것이었다. 구한말 단발령의 현대판을 겪고 있음에도 우리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가위질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었다. 안타깝게도 기자가 취재한 학생들 중 대부분은 그 폭력 뒤에 숨겨진 목적을 파악하지 못한 듯 보였다.

폭력 뒤에는 우리를 통제함으로 우위에 오르려는 그들의 권력욕이 있었다. 가위로 난도질된 우리의 자존심은 그들의 권력의 파이를 크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우리를 통제하지 못하면 그들은 권력을 잃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권력이 존재 근거인 듯했다. 그들은 무엇에 홀린 듯 우리를 간섭하고 또 간섭했다.
오늘도 교문 앞에서 회초리를 맞는 학생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기자의 2년 전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