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면희(녹색대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성장 위주의 산업사회가 환경재난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자, 이에 대처하는 환경운동이 산업 선진국에서 먼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시기는 1960년대 말 무렵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환경운동에 근원적 이념을 제공하는 생태주의가 태동하게 되고, 그 대표적 입장 가운데 하나가 생태아나키즘(eco-anarchism)이다. 이 사상을 선도한 사람은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인데, 그는 아나키즘에 생태주의를 접목시킨 새로운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아나키스트인 북친은 자신의 사상을 주로 사회생태주의(social ecology)라고 불렀는데, 그 연유가 있다. 또 다른 생태주의 사상인 심층생태주의(deep ecology)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위기의 근본 원인을 인간 중심주의 세계관으로 꼽고 있는데, 이런 사조가 두루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에 따라 해법도 그 반대항인 생태 중심주의에서 구하는 것이었는데, 북친은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양자의 차이를 보기 위해서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선진국 시민이 환경재난을 위기로 심각하게 인식하던 무렵 맨해튼에 있는 뉴욕자연사박물관에서 환경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북친도 이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먼저 인간 때문에 멸종하게 된 동식물 종이 소개되고, 이어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이 펼쳐지면서, 마지막에 대형 거울을 설치해서 인간인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책임을 통감하는 기획 행사였다.

마침 북친이 방문했던 날 여러 학교에서도 행사장을 찾았다. 한 곳에서 백인 교사가 열심히 전시회 취지를 설명하고 있었고 그리고 또 다른 곳 거울 앞에는 흑인 소년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허름한 옷차림의 할렘가 흑인 소년도 석유 메이저 엑손사의 회장과 마찬가지로 인간이기 때문에 위기 발생에 동등한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한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면 북친은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그는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인 서열화(hierarchy)가 제반 사회문제를 초래하고, 이것이 확장되어 자연지배에 따른 환경위기도 초래했다고 보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가 아나키즘의 계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나키즘은 강제적 권력이 사라진 사회를 희구한다. 국가는 법에 의거하여 유지되는데, 그 법은 흔히 국가 지배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에 따라 시민은 자유를 박탈당하기 일쑤다. 이에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은 타인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상호 부조주의에 따른 연맹을 결성하여 국가를 대신토록 함으로써 인간이 자유를 만끽하면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북친은 여기에 생태주의 의식을 갖추게 될 때, 그런 사회는 자연과 함께 하는 진화론적 발전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여겼다. 예컨대 자유로운 소공동체 구성원은 머리를 맞대는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면서 지역자치를 행하게 될 때, 그 지역 생태계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생활양식을 구축하기 때문에 자연 친화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생태아나키즘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이상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실현은 난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나키스트가 조망하는 것만큼 인간이 전적으로 선하지도 않고 또 지혜로운 결정 위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사회적 요인에 주안점을 두어 환경해법을 모색하므로 자연보전을 위한 직접적 실천지침을 제시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