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 않는 배타적 사회 풍토 극복해야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의 『이미 우리가 된 이방인들』에서는 신라를 패망하게 한 원인이 내부에서 발생한 배타적 태도라고 지적한다. 신라 하대에는 무역을 통해 획득한 부를 서라벌의 지배층이 독점하면서 지방민들의 희생이 가중됐다. 서라벌은 신라의 모든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다. 전쟁에서 전사한 장수의 가족에게 서라벌로 이주하도록 포상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지방 출신들은 서라벌 출신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아 부와 지위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국제화의 길을 걸어갔지만, 결과물을 나누는 것에는 폐쇄적이었던 신라는 그 스스로의 배타성으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침몰한 것이다.

이방인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방인이라는 단어에는 타국에서 왔다는 객관적 사실 보다는 ‘우리’가 아닌 ‘타인’이라는 주관적 시선이 무의식중에 내재돼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의 이방인은 특정 계층으로 한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에서부터 △외국인 학생 △편입생 △지방 학생 △새터민 학생 등 우리와 가장 밀접한 대학사회까지도 이방인은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새터민 학우는 “얼마 전 토론 수업에서 새터민이라는 신분을 밝혔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고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 놓으며 외면적으로 차이가 없어 동일하게 바라보다가도 새터민임을 밝히자 ‘다르다’는 시선이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학우의 경험은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배척이 아닌 단순히 ‘나와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부터 이방인이 발생하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처럼 이방인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할 때 가장 먼저 제기되는 원인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있는 유교적 배타주의, 폐쇄된 지리적 요건 등 이다. 그러나 세계화와 정보화가 급속하게 이뤄진 현 상황에서 지리적 요건과 같은 물리적 한계는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현대사회에 이방인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른 대상을 배척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학연, 지연 등의 연고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학벌주의 사회의 경우 그들 간의 강력한 연대를 통해 세력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 이방인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기존 집단에 편입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 지난해 우리학교에 편입한 전헌수(철학01)학우는 “편입생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학우들과는 달리 중간에 합류하는 입장이다 보니 학교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걱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른 집단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이방인에 대한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이 상대에 대한 타자성을 극대화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설정될 경우 더욱 문제가 된다. 장애인을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인식해 함께 어울리지 않거나 이성애라는 기준을 통해 동성애자들을 배척하는 사회 풍토 등이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방인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 유지에만 치중해 다른 계층을 배척하다가 내부적으로 분열을 일으켜 피해를 입은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대혁명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이루지 못한 프랑스 사회를 예로 들 수 있다. 프랑스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부르주아들의 소외계층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인해 계층 간의 갈등만 반복하며 정체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방인의 양산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발전을 저해한다.

이처럼 이방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가 ‘다름’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발생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편견을 극복할 때 그들은 영원한 이방인이 아닌 ‘우리’를 이루는 다양한 주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