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 대학가요제

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올 추석 시즌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즐거운 인생’. 대한민국의 40대 중산층 가장을 대표하는 세 남자 주인공들에게, 대학 시절에 결성한 밴드 활화산의 멤버였다는 사실은 초라한 일상 속에서 훈장처럼 빛난다. 비록 일류 대학의 엘리트들도 아니었고 집안이 유복해 확실한 미래가 보장돼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이라는 꿈은 20대인 그들에게 ‘살아있다’는 생동감과 살아갈 이유를 안겨주었다.

이 밖에도 대학가요제는 다수의 현대 문학과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며 현대 대중문화에서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입증해 보였다. 배가 고픈지도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지도 모르게 했던 대학생들의 로망. 그렇게 대학가요제는 군사 독재의 억압 속에서 민주화의 열망을 가슴 깊은 곳에 띄워야만 했던 70년대 대학생들의 끓어오르는 열혈을 음악으로 풀게 한 대학문화의 정점이었다.

1977년에 정동 MBC 문화체육관에서 1회로 시작된 대학가요제는 94년도에 이르러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개최되었다. 첫 개최에서부터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학문화는 물론이거니와 대중문화에도 획기적인 새 바람을 불어 넣었던 대학가요제였지만 첫 기획과 편성, 제작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가요제를 처음으로 구상했던 당시 MBC 임성기 편성국장은 “대학문화와 방송의 접목이 방송의 질과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 끝에 대학가요제를 창안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대학 사회가 시끄러웠고 저조한 참여도에 대한 ‘윗선’의 우려 때문에 기획 채택부터 쉽지 않았으며, 기획이 어렵게 채택된 이후에도 프로그램을 담당하겠다는 제작부서가 없어 결국 편성에서 제작까지 내가 맡게 되었다”며 대학가요제 탄생 과정에 있었던 난관들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강준만, 『한국대중매체사』)

그러나 70년대 MBC가 가졌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1회부터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는 폭발적이었으며 결국 대학가요제는 MBC의 고정 연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기염을 토했다. 천여 명에 육박하는 대학생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그 가운데서도 대학생만의 독창적인 멜로디와 리듬, 세상과 사랑에 대한 가사로 무장한 팀들이 본선에 진출해 마이크 앞에 설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1회 대상을 수상했던 서울 농대 소속의 밴드 샌드 페블즈가 부른 ‘나 어떡해’는 7, 80년대를 주름잡은 고고리듬과 그룹사운드의 유행에 한 몫 했고, 2회 은상을 차지했던 ‘탈춤’의 활주로는 80년대 한국 락 역사에 획을 긋는 밴드 송골매의 전신이었다. 또한 9회 대상을 차지했던 높은 음자리의 ‘바다에 누워’는 당시 대중가요 못지않은 인기 몰이로 지금까지도 7080세대들의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기가요가 되었으며 12회 대상을 차지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대학가의 축제 응원가로 오래토록 사랑받았다. 이 밖에도 유열, 전람회, 이한철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 같은 가수들이 대학가요제의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심수봉, 노사연, 김경호 등의 가수들도 대학가요제를 거쳐 갔다.

그렇다면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음악들이 대중가요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는 “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대학의 순수성과 비상업성 그리고 젊음의 발열이 독창적인 음악 시도들로 나타나 락, 포크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며 “결과적으로 대학가요제가 우리나라 음악 수준을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 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7, 80년대에 대학가요제가 한국 문화의 판도를 뒤흔들자 비슷한 형식의 가요제들도 속속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78년도에 처음으로 개최된 TBC의 해변가요제와 80년도에 MBC 라디오국이 개최한 강변가요제. 특히 강변가요제는 대학가요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90년대 쟁쟁한 가창력을 지닌 신인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학가요제, 도약 향한 과도기인가 쓸쓸한 은퇴기인가
-30돌 넘긴 2007 대학가요제에 즈음하여

그렇다면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음악들이 대중가요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는 “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대학의 순수성과 비상업성 그리고 젊음의 발열이 독창적인 음악 시도들로 나타나 락, 포크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며 “결과적으로 대학가요제가 우리나라 음악 수준을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 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7, 80년대에 대학가요제가 한국 문화의 판도를 뒤흔들자 비슷한 형식의 가요제들도 속속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78년도에 처음으로 개최된 TBC의 해변가요제와 80년도에 MBC 라디오국이 개최한 강변가요제. 특히 강변가요제는 대학가요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90년대 쟁쟁한 가창력을 지닌 신인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대학가요제는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태동한 연예 기획사들의 스타 시스템에 의해 정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체계적인 이미지 메이킹과 전문적인 작사·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곡들로 좀 더 대중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대중들의 달콤한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연예 기획사의 ‘준비된 프로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가수를 꿈꾸는 대학생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이미 진부해진 멜로디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식상한 가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학생만의 실험과 창조적 도전 정신은 찾기가 힘들어 졌고 심지어는 대중가요의 아류 수준에 불과한 음악들도 등장했다. 아마추어임을 당당해 하지 않고 어설프게 프로 흉내를 내려는 일련의 흐름들이 여실히 음악에 반영된 것이다.

대중가요라는 시대적 흐름 때문인지, 추락해 가는 시청률 때문인지 MBC도 ‘MBC 출신 가수 만들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2005년,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현실을 담은 노래 ‘잘 부탁드립니다’를 통해 대학가요제의 새 빛으로 떠오른 EX의 이상미 씨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잠재성을 가진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MBC의 예능 프로그램들에 과도하게 출연하며 뮤지션으로 거듭날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또한 2006년 대학가요제에서는 대형 연예 기획사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이수만 씨가 특별 심사위원장을 맡아 논란이 됐고, 실험적인 멜로디 구성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상 후보로 점쳐진 뮤즈 그레인이 입상 명단에 들지 못하면서 시청자들의 비난과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시청률 역시 90년대 후반부터 한 자리 수를 벗어나지 못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가요제를 통해 대학가요제의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은 조금 이른 감이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대학생들만이 가지는 주류 문화에 대한 저항성은 문화 산업이 자본주의에 포위되면 될수록 그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며 대학가요제가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낼 수 있는 잠재된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김 씨는 “그 잠재력을 다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설픈 대중가요의 모사에서 탈피해, 독창성과 참신한 시도만으로 가치를 지니는 대학가요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해 앞으로 대학가요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함을 더불어 강조했다. 대학가요제만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이 상업성과 진부함으로 물든 대중문화에 신선한 돌파구가 되기 위해서 재정비를 해야 할 때인 것만큼은 확실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