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주(공학계열07) 학우

기자명 김정찬 기자 (sansiro@skku.edu)

자연과학캠퍼스, 한 중년의 신사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한참을 헤매던 그는 비로소 강의실로 들어선다. 맨 앞자리에 앉아 한 시간 내내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는다. 수업이 끝나자 교수님께 공손히 인사드리고 또 다른 강의실을 찾아 바삐 자리를 뜬다. 그는 올해 48세의 나이로 우리 학교에 입학한 정길주 학우다.

학교 밖, 그는 부인의 이름을 딴 ‘영화 꽃 식물원’의 사장님이자 대한민국 1호 숲 해설가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그의 학력은 중졸이 전부였다. “섬유공장에서 당구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고향을 느끼려고 작은 정원을 가꾸고 있었는데 이웃 아주머니께서 보시더니 화원을 한번 해보라고 하셨죠” 그 날부터 식물도감을 파기 시작했고 자그마한 화원을 차리게 됐다.

그러나 그 후에는 그의 학력이 문제가 됐다. 일에도,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그를 보고 주위에서 ‘훌륭한 사람’이라며 치켜세웠고 학력도 높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학력이 아쉬워 학교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숲 해설가가 돼보니 혼자 한 공부로는 많이 모자랐죠.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 학우는 아직도 입학시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면접 보러 왔다고 하자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께서 꼭 붙을 거라며 응원해주시더군요” 그러나 호기롭게 입성한 캠퍼스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수강신청부터 큰 일 치렀어요. 점심시간이 없어서 교수님하고 밥도 한 끼 못 먹는다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중이다. “학기 초에는 조교님들하고 교수님들을 찾아갔고 수업시간에는 교수님과 눈 한 번 더 마주치려고 앞에 앉아요. 이렇게 눈도장이라도 찍어두면 학점이 좀 잘 나오겠죠?” 그러나 그가 앞에 앉는 진짜 이유는 학점 때문이 아니다. 앞에 앉은 자신의 모습이 강의실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고 그것이 그를 합격시켜준 학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서  남다른 애교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강의실에서 그는 수많은 학우 중 한 명이지만 숲에서는 단 한명의 해설가가 된다. “백두대간에 갔을 때 한 아이가 벌집을 밟아 다들 줄행랑을 치기도 했고, 빗속에서 주먹밥을 먹기도 하면서 함께 숲을 배웠어요. 방에만 있던 아이들이 어느새 숲과 함께 숨 쉬는 것을 볼 땐 정말 행복하더군요” 그는 숲 해설가로서 크나큰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만난 아이가 숲을 느끼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그 느낌을 공유하게 될 겁니다. 제가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나 할까요”

숲에 대한 열정으로 그는 벌써 전공까지 정했다. “조경학과에 갈 겁니다. 숲에 관한 것이라면 복수전공은 물론이고 박사학위까지도 금방입니다” 나중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환경학교를 세우겠다는 그의 눈가 주름이 그가 사랑하는 나무들의 나이테처럼 보였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넓디넓은 그늘을 선물하는 느티나무의 그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