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한 쪽 구석에서 소주를 마시는 노숙자, 1백 원만 달라며 구걸하는 걸인, 손가락이 일곱 개인 네팔 출신 노동자, 만취된 상태로 길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는 샐러리맨. 이들은 모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 선녀가 약혼자를 찾기 위해 지하철 1호선(이하:1호선)을 타면서 마주친 사람들이다. 이처럼 뮤지컬 속에서 묘사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다만 현실과 뮤지컬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선녀의 따뜻한 시각과는 달리 현실 속 시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실제로 △서울역 △종각역 △청량리역 등 1호선 대부분의 역 근처는 박스를 깔고 누워 자는 노숙인들의 땀 냄새와 잡상인들의 고함 소리로 가득하다. 중심가를 지나는 구간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오래된 지하철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낸다. 종각역에서 만난 문진영씨(31)는 “시청에서 종각까지는 항상 사람이 많아 사용하기가 불쾌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인 1호선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해 왔다. 1974년에 완공돼 34년째 운행되고 있는 1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을 연결하는 지하 7.8km의 종로선에서 시작됐다. 당시 종로선은 단 9개 역이 고작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지하철도 시대’를 연 최초의 지하철 노선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1호선의 의미는 수도권의 교통에 한 획을 그었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1호선의 또 다른 가치는 뮤지컬 2막에서 잘 드러난다. 모피코트를 걸치고 지하철에서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리는 ‘강남 아줌마’, 1호선과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등장은 1호선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입시의 메카 강남역, 대학문화의 중심지 신촌역과 이대역을 노선으로 하는 ‘그들의’ 2호선과는 달리 1호선은 서민들의 모습을 간직하는 소박한 노선이다. 이와 관련 종로 3가역 박병철 대리는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강남역과는 달리 1호선은 노인 분들이 많이 이용 한다”며 소외계층을 싣고 묵묵히 달리는 1호선의 단면을 이야기했다.

그래서인지 1호선에는 다른 노선에서 찾기 힘든 인간 냄새로 가득하다. 수많은 지하철 노선 중에서도 1호선이 뮤지컬의 소재가 될 수 있을 만큼 1호선에는 모든 인간 군상의 모습이 집약돼 있는 것이다. 노숙인과 노점상, 잡상인을 무자비하게 내쫓는 ‘사람’들이 있을 뿐 그들을 내버리는 ‘공간’은 없다. 뮤지컬 속에서 그들의 아픔을 묵묵히 포용하고 있는 1호선을 발견했을 때, 그곳은 더 이상 냄새나고 더러운 공간이 아니다.

뮤지컬 말미에서 돈이 생겼으니 택시를 타자고 권하는 걸인에게 노숙자가 답한다. “우리를 태어주는 것은 지하철 1호선 밖에 없어”. 서민 모두의 아픔을 포용하고 함께하는 공간. 그것이 1호선이 담고 있는 진실 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