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용성 기자 (blueblue@skku.edu)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하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가입ㆍ활동할 수 있는 ‘하영봉사단’. 이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은 다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하영의 이름을 지닌 배하영 학우다. 작년 스물넷의 나이로 우리 학교 유동학부에 입학한 그녀는 “저와 같은 이름이라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해 봉사활동을 하는 데 많이 동참해 줄 것 같았어요”라며 봉사단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하영봉사단’과 더불어 ‘우리봉사단’을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서울/경기/충청 등 지역별로 모여 환경관련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배 학우. 평상시 그녀는 상시봉사팀을 통해 홀로 사는 노인 등을 위한 소규모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꾸준히 봉사활동이 진행됐으면 하는 그녀의 바람에 부응하듯 3년 전 30명이던 우리봉사단의 회원 수는 현재 8천 8백 명에 이른 상태다.

이렇듯 두 개의 봉사단을 이끌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그녀. 그러나 그런 그녀도 처음부터 봉사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 그녀는 미대에 진학해 화가의 꿈을 키웠었다. 하지만 1년간의 대학생활 끝에 그녀는 공허함을 느끼게 됐고 결국 휴학계를 내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던 중 그녀는 대학, 논어, 맹자 등을 가르치는 ‘우리서당’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한문이나 공부해야겠다 싶어 들어간 서당에서 제가 고민하던 현재와 미래의 방향이 결정될지는 몰랐어요” 평상시에 ‘나눔’의 중요성을 자주 얘기하던 서당선생님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 ‘나눔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 시간에 세상에 ‘봉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봉사활동을 하는 저이기에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많은 면에서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우리가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 결과 2004년 겨울,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몇몇 친구들과 뜻을 같이해 지금의 우리봉사단을 만들게 되었고 즐거운 봉사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봉사활동이 언제나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태안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초기에는 국민의 활발한 기름제거 봉사활동이 전개돼 저희는 모금활동에 전념했어요. 하지만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국민의 관심이 멀어졌고 그 당시에 찾은 태안반도는 처참한 모습으로 제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그날 이후, 그녀는 모금활동뿐만 아니라 태안에 상시봉사팀을 파견하는 것에 대해 봉사단원들과 협의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자기만족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과 이를 치하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며 이제는 자신과 같이 봉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지닌 진정한 봉사자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가 바라는 ‘세상에 봉사가 없는 날’이 가까운 미래에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