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핑퐁 외교로 스포츠외교에 대한 관심 급증해

기자명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1969년 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11년이 지난 후에야 평화 협상이 논의과 시작된 이 전쟁의 이름은 ‘축구 전쟁’. 월드컵 예선 경기의 석연찮은 결과로 인해 두 나라는 전쟁까지 가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때로는 치열했던, 때로는 평온했던 스포츠외교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스포츠가 외교적 성격을 띈 ‘스포츠외교’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776년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그리스의 올림픽은 매 4년마다 ‘올림피아’에서 도시국가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였다. 특히 당시 올림픽기간은 매우 신성했기에 국경을 초월해 선수와 참관인의 왕래를 돕거나, 전쟁을 중단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를 계기로 도시국가들 간의 왕래를 촉진함으로써 국가간의 화합과 협력을 꾀했던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수준의 스포츠 ‘행사’가 본격적으로 ‘외교’의 성격을 띄게 된 계기는 중국이 14명의 미국 탁구 선수 대표단을 자국에 초대한 1971년의 ‘핑퐁 외교’다. 적성국이었던 두 나라의 선수단이 왕래한 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이 사건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핑퐁외교’ 이후 10개월 만에 미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진전된 것이다. 냉전 당시 두 나라가 스포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긴장 관계의 물꼬를 트게 한 이 사건은 현재 스포츠외교의 고전이자,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이같은 스포츠외교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나 전략적 연구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스포츠외교가 이성적, 논리적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외교 관계를 풀 마지막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포츠와 외교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최근 티벳의 독립 문제로 인해 서방의 각국 정상들이 올림픽에 참여를 거부하는 등 국제 사회에 끊임없는 긴장의 초석을 제공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와 외교의 관계를 두고 수많은 논의가 오가는 상황은 최근 들어 스포츠외교의 영향력 자체가 매우 커졌음을 반증하는 사례기도 하다. 수 천년전부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던 관계가 돼버린 스포츠와 외교. ‘스포츠외교’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스포츠와 외교의 장점 모두를 두루 포섭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