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수 (토목76) 동문

기자명 권시정 기자 (ksj0114@skku.edu)

안녕하세요 애청자 여러분. 70년대에 <유머1번지>, <꿈과 음악사이에>, <별이 빛나는 밤에> 등에서 코미디언과 DJ로 맹활약하다 요즘은 TBN 한국교통방송 <고영수의 클릭! 자동차세상>을 맡고 있는 고영수입니다.

오늘은 성균관대 토목공학과에 다니던 제 대학시절 얘기부터 해볼까 해요. 사실 저희 집은 피난민 출신이어서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하지 않으면 휴학을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답니다. 동생들 학비도 책임져야 해서 아르바이트는 필수였죠. 그래서 학교를 다니며 명륜동 악기가게에서 기타 강습을 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명동의 한 카페에 갔는데 ‘5분 스테이지’라는 행사를 하고 있는 거에요. 5분 동안 재밌게 이야기를 하면 음식을 무료로 준다더군요. 친구들이 음식값 좀 덜어보자며 절 떠밀었죠.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오려고만 하면 사람들이 ‘계속!’을 외쳐서 1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더니 주인이 매일 와달래요. 사실 전 사람들 북적북적한 곳에 가는게 싫었지만 기타 과외보다 학비에 더 도움이 돼서 주말마다 나가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CBS PD 한 분과 조영남씨가 오셨는데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데굴데굴 구르는 거에요. 제가 너무 웃기다면서요. 그날 밤 바로 방송국에 가서 라디오 게스트를 했어요. 방송이 뭔지도 모르던 탓에 On Air 불이 켜졌는데도 “무슨 말을 해요? 재밌게 말하라고요?”하며 허둥댔는데 그게 고스란히 전파를 탔죠 하하. 그러다 한달 후 저만의 메인 방송도 맡게 됐답니다. 제가 마무리 멘트로 “졸리신 분은 주무시든지 알아서 하세요”, “내일도 듣고 싶은 분만 들으세요” 등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을 했는데 당시엔 이게 엄청난 파격이었죠. 청취자분들 반응도 파격적이어서 방송을 시작할 땐 청취율 꼴찌였던 CBS가 6개월만에 1위를 했을 정도였답니다.

덕분에 시험기간엔 방송국에 과탑 친구를 데려와 방송이 끝나고 밤새 공부를 배워야 할 정도로 바빠졌죠. 심지어 한번은 지방방송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다 픽 쓰러졌어요. 그날이 시험 전날인 바람에 잠깐 눈 붙일 새도 없이 기차 안에서까지 공부를 했더니 잠을 못잔지 40시간이나 됐더라구요. 이렇게 쉼없이 방송을 계속하다보니 저도 슬슬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군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지루한거에요.

그러던 중 동아그룹의 홍보실장자리 제의가 들어왔어요. 월급은 당시 방송으로 벌던 돈의 1/4밖에 안됐지만 해외 각국을 다닐 수 있는 자리였죠. 듣는 순간 딱 이거다 싶더라고요. ‘이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이후 미국 유학도 가고 60여 개국에도 나가 살아있는 경험을 했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어요. 방송활동만 계속했다면 놓치게 됐을 많은 것들을 잡을 수 있게 해준 ‘기회’였으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즐기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아참 ‘곱게 늙자’는 말도요. 지금은 와 닿지 않으실지 몰라도 제 나이쯤 되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굴과 눈빛에서 다 드러난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하하. 내일도 방송을 듣고 싶으신 분만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