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 대학 총학생회장들 날카로운 질문, 한 총리는 “믿어달라”는 답변만

기자명 김정찬 기자 (sansiro@skku.edu)

“답답함 가시지 않았다.” 지난 6일 있었던 한승수 국무총리와의 토론이 끝나고 권인표(법02) 인사캠 총학생회장이 내뱉은 말이다.

▲한승수 국무총리.
이 날 오후 3시30분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우리 학교 △고려대 △단국대 △숙명여대 △연세대 총학생회가 주최한 ‘한승수 국무총리와 대학생들의 시국토론’이 열렸다. 이 날 토론회에는 주최 측 뿐만 아니라 32개 대학 총학생회가 함깨한 대규모 행사였고,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만 가득 남겼다.

토론회는 크게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협상내용과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한 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먼저 김창훈 계명대 총학생회장은 “수십차례의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제야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온 것은 너무 늦었다”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3단계 자율금지 요청은 정부의 잘못된 협상에 대한 책임을 민간업체에 전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합의한 것을 파기할 경우 무역마찰이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의 여론을 보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지만, 강동호 제주대 총학생회장은 “국민들의 의견 때문에 협상에 손질을 가해야 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세희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민간차원에서 수입, 수출할 경우 정부에서의 대책안을 말해달라”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요청했다. 한 총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들여오지 않겠다”고 단언하면서도 “정부의 노력을 이해해달라”고 답해 명확한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이민섭 자과캠 총학생회장이 한 총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우리 학교 이민섭(고분자05) 자과캠 총학생회장은 "대통령 담화문에서 정부가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고 했는데, 너무 낮게 있어서 국민을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한 총리가 담화문에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 측에 개정요구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새 상황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촛불집회 진압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진행됐다.

김세희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정부는 등록금 동결을 외치는 학생들을 연행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학생들도 연행했다. 대체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창구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정수환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물대포로 진압할 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뒤로 빠지려는 찰나에 경찰들이 갑자기 진압을 시작했고 나 또한 연행됐다”며 “국민들을 섬긴다면서 국민들을 얕보고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그 상황에 대해선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경찰들도 많이 다쳤다”며 “몸싸움이 일어나 다치는 것은 시위를 합법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여러분들이 하는 시위가 이미 그 힘을 많이 보여줬다”면서 “정부를 한번 더 믿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정수환 고려대 총학생회장, 김세희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김창훈 계명대 총학생회장.
그러나 이민섭 자과캠 총학생회장은 “자꾸 이해해달라 협조해달라고만 이야기하는데 이 자리는 그런 답변을 들으려고 만든 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해결책을 듣기 위한 자리”라며 “어청수 경찰청장이 불법 집회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는데 법과 국민의 의견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준법진압과 불법시위의 문젠데, 이민섭 군이 종로경찰서 서장이 된다면 질서를 우지하고 제재를 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정부도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정정당당하게 시위해주면 고맙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편 시위의 불법논란과 관련한 논의가 길어지자 사회를 맡았던 송지헌 아나운서가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생각하는 책임있는 시위가 대체 어디까지냐"고 질문을 던지자, 방청객에서는 “사회자는 중립성을 지키라”, “그게 사회냐”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이 때 송 아나운서가 “저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이 자리에 앉았다”라며 “사회를 보지 말라고 하면 지금부터 보지 않겠다”라고 말해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 사회를 맡은 송지헌 아나운서.

토론회는 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급박하게 진행됐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고, 이에 학생들은 마무리 발언에서까지도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형호 단국대 총학생회장은 “국민이 뿔났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 토론회 이후로 뿔이 하나 더 솟아나지 않을까 싶다”며 “토론회에 나오신다고 해서 ‘대책을 갖고 나오시겠구나’ 라는 희망을 갖고 밤새 준비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형호 회장은 이어서 “국민의 대한 낮은 자세라고 하는데 미국에 대한 낮은 자세로 보인다”며 “옆에 있는 태극기에 부끄럽지 않으시려면 국민에게 낮은 정부가 되라”고 지적했다.

강동호 제주대 총학생회장 역시 “이런 토론을 하려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게 아니다”라며 “정부의 틀을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정부의 국무총리처럼 더 많은 힘을 갖고 대통령을 보좌해달라”고 충고했다. 김윤권 강원대 총학생회장은 “국민들에게 법을 적용하기보다 국민들에 맞는 법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됐고 국민의 민심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도 “정부가 잘못한 것에 대해 비판도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힘을 모아야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 왼쪽부터 강동호 제주대 총학생회장, 성치훈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리 학교 이민섭 자과캠 총학생회장, 이형호 단국대 총학생회장, 김동욱 충남대 총학생회장, 곽도영 동아대 총학생회장.
한편 이 날 방청석에서는 총학생회장들이 미처 꺼내지 못한 비판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김승준 군은 “한 총리를 선배로서 존경했는데 토론회가 끝나고 나니 그 마음이 사라지려고 한다”며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이 정말 합당하다고 믿는지, 필요하면 안 사도 된다는 논리가 맞는 것인지 제고해달라”고 비판했다.

고려대학교 김지윤 양 역시 "대통령이 우리 학교 선배다. 요즘같이 학교가 부끄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한 총리는 전두환 정권 때 국보위에 가담한 걸로 안다. 그래서 국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군홧발로 짓밟나“고 몰아부쳐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총학생회장단은 토론회가 끝난 후 시청으로 이동해 촛불집회에 참가했으며,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단 4명 역시 이에 동참했다.

권인표 인사캠 총학생회장은 “우리 학교에서도 현재 청년심산 공동선언ㆍ실천운동단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며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니 학우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 날 토론회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학생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