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작가, 독자와 독자 잇는 쌍방향 교류 가능해져

기자명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언제부턴가 신문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문열이나 황석영 등 굵직한 문인들의 작품들이 차근차근 연재되던 이전의 일간지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다. 실제로 소설을 연재하던 신문은 이제 대부분 연재소설란을 아예 없애거나, 자극적인 만화를 실어 독자의 눈길만 끄는 경우가 허다한 형편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에 큰 타격을 입는 곳이 바로 본격 문학계라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본격 소설의 창구는 잡지와 신문이었다. 신춘문예와 연재소설, 그리고 여러 문학상 제도를 통해 대중과 문학이 서로 교류할 수 있었던 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문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요즘, 본격 문학 작가들이 새로운 곳으로 창작의 장을 옮겼다.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것. 지난해 소설가 박범신이 산악소설 『촐라체』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연재한 데 이어 소설가 황석영도 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블로그를 통해 연재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가벼운 문체의 글들이 인기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본격 문학의 성공보다는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이 사실이었다. 비교적 젊은 세대로 구축된 사이버 공간에서 텍스트로만 이뤄진 본격문학이 관심받기란 힘들것이 ‘상식’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달리 ‘촐라체’와 ‘개밥바라기별’ 블로그에는 연재 기간 동안 각각 1백20만명과 1백80만명이 넘는 네티즌 독자들이 다녀갔다.

이처럼 박범신·황석영·정이현씨의 잇따른 시도는 그동안 장르물과 아마추어 문학이 독점해 오던 인터넷 공간이 전문 작가들의 본격 소설과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이와 관련 황석영 소설가는 1999년 시인 이문재씨와 나눈 대담에서 “컴퓨터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자의 변용이니까요. 컴퓨터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이 변화된 언어를 받아들이고 사용하지 않겠다면 세계와의 소통을 중지하겠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일단 이 속에서 숨통을 열어야만 합니다”면서 오래전부터 문학과 인터넷과의 만남을 예감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본격문학의 블로그 연재는 하루 수 만건의 방문이 이뤄지는 인기 블로그에 비하면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실제로 100만명이 넘는 네티즌 독자들 중 호기심에 블로그를 클릭했을 뿐, 소설의 내용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부지기수라는 것. 또한 인터넷 연재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점차 심화되고 있다. 악플러나 스포일러 등 인터넷 자체가 가진 문제점뿐만 아니라, 댓글 형식으로 즉각 표출되는 독자의 반응은 작가를 위축시키거나 심지어 작품을 애초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작가가 대중의 반응에 과도하게 신경 쓴 나머지 스스로 작품의 질을 떨어뜨려 본격문학의 예술성 자체가 점차 떨어지리란 부정적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기성작가가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과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시도했다는 것과 동시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독자와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긍정하며 본격문학이 스스로 나아갈 활로를 개척했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본격문학이 갖고 있었던 ‘한정된 독자층’과 ‘단발성 교류’에 그친다는 한계점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이 인쇄매체와 사이버 공간을 넘나들며 작가와 의견을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은 본격문학의 이러한 시도에 대한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본격문학의 수익성을 장담하지 못해 출간을 꺼렸던 출판계 역시 이런 색다른 트렌드를 환영하고 있다. 순수문학의 예술성과 인터넷 매체의 특징인 대중성 모두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촐라체』 단행본을 출간했던 푸른숲의 이재현 대리는 “독자들이 책에 대한 인지도가 워낙 높아 본격적인 홍보 이전부터 책을 찾는 고객도 있었다”며 “본격문학을 많이 찾던 4~50대의 기성 독자들뿐만 아니라 2~30대도 주독자로 포함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인쇄 매체를 뛰어넘어 독자와의 교류로 살아숨쉬는 인터넷으로 창작 공간을 옮긴 본격문학. 본격문학만의 매력인 예술성과 인터넷의 뛰어난 대중 친화성을 바탕으로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문학계에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