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현 편집장 (kjhjhj1255@skku.edu)

얼마 전 친구와 우연히 뮤지컬 한 편을 보게 됐다. 하늘과 가까운 어느 작은 달동네 주민들의 팍팍한 서울살이 이야기. 그 가운데서도 주축이 된 것은 몽골에서 온 한 ‘이주노동자’ 총각의 이야기다. 솔롱고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불법체류자 신분을 악용하는 사업주에 의해 임금연체, 강도 높은 노동, 부당해고 협박 등에 시달린다. 심지어 직장도, 부인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서울 노총각들에게서 ‘니들 같은 놈들이 우리한테 붙을 여자, 돈, 직장까지 전부 뺏어가는 거다’라는 폭언과 함께 흠씬 발길질을 당하기도 한다. 이미 40여만 명이 훌쩍 넘은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의 고달픈 한국생활은 이렇게 뮤지컬 소재로 쓰일 만큼 ‘보편적’인 이야기가 돼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전래동화 속의 보편적인 스토리가 언제나 똑같은 결말을 향하듯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세도 언제나 ‘입국-노동-불법체류자 신세-강제추방’의 수순을 밟는다. 그래서 이들의 현실을 거듭 마주할수록 가슴이 무뎌지는 게 아니라 더 먹먹해진다.

물론 이주노동자들을 사각지대에서 구원해내려는 보호정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연수생 자격으로 고용돼 근로자로서의 권리가 무참히 외면당해도 구제할 도리가 없던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대신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도입돼 4년 전부터 시행 중에 있다. 이 제도는 내국인 우선 고용을 의무화하는 동시에 정부가 사업자에게 고용 허가권을 행사함으로써 외국인근로자의 초과수요를 사전에 통제할 수 있고 사업자의 자격을 미리 점검할 수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충실하게 보호할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지금까지 수차례의 집회를 열어 “이주노동자를 위한다는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탄압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외친다. 바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 때문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소속 사업장이 아무리 심한 인권유린을 저질러도 회사가 부도나거나 일방적으로 회사 쪽에서 고용 연장을 거부할 때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3번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으며 만약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기존업체에서 퇴사한 후 2개월 내에 재취업하지 못할 경우 ‘불법’ 딱지를 얻게 된다. 회사가 싫어 죽겠는데 떠날 자유가 없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는 순간,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불법’이 될 수 있는 걸까. 일부의 고용을 허가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불법체류를 부추기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당사자들은 ‘불법허가제’라고 부른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법무부에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울 것을 지시한 이후 정부차원의 단속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불법체류자 추가 발생을 차단하고, 5년 내에 불법체류자를 출국시키는 한편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전국적인 부처 합동단속을 실시했으며 8월부터 불법체류자 감소 특별대책반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불법체류자의 증가가 국내 노동시장을 왜곡시키고 각종 사회문화적 갈등을 유발해 합리적인 외국인정책 수행을 어렵게’ 했기 때문에. 덧붙여 최근 들어 외국인노조를 만들고 한미FTA체결 반대 및 이라크 파병반대 같은 정치적 집회에까지 참여하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에 정부는 금년 말까지 불법체류자를 20만 명대 수준으로 감소시키고 2012년까지는 체류외국인의 10% 이내로 줄일 방침을 세웠다.

이 대통령님의 방침’은 착착 진행돼 이주노동자들의 귀를 닫고, 입을 막고, 사지도 꽁꽁 묶어 고향으로 고이 보내드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 달 30일 법무부가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이미 지난 7월까지 불법체류 외국인 1만8천4백12명이 단속되고, 이 중 80%가 체류허가를 다시 얻지 못해 강제 출국됐다. 다문화 화합이니, 이문화 축제니 하는 그럴싸한 말들로 국민들의 이목을 돌려놓고 그 이면에서는 토끼몰이식 사냥을 즐기는 대한민국 정부. 그러면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떠드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단속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고 있을 이주노동자들 뒤엔 ‘미수다’에는 없는 어글리 코리아의 슬픈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