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수능 날짜가 코앞인 ‘고3 병사’들은 찬란한 미래를 위해 ‘입시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2학기 말, 하나 둘씩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며 ‘예비 졸업생 병사’들 또한 ‘취업전쟁’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 졸임이 어디 ‘진짜 전쟁터’만 할까. 영화에서만 보던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흩날리는 총알 파편으로 눈앞은 뿌연데 옆에서 다리 한쪽을 잃은 동료가 울부짖는 전쟁터, 소총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병사의 일분일초야 말로 그 어느 삶보다 위태롭고 치열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전선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또 다른 ‘병사’들이 있다. 폭탄이 바로 앞에서 터지는 상황에서도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펜을 든 병사들’. 그들은, 바로 종군기자다.

 

종군기자란 ‘전쟁터에 직접 나가 전선이나 군의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를 말한다. 세계 최초의 종군기자로 꼽히는《런던 타임스》의 W. H.러셀이 크림전쟁에 종군한 이래로 세계적으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돼 왔지만 국내에선 지금도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흔치 않다.

약력
1998년 군사잡지 플래툰 객원기자.
2001년 대만 타겟 매거진 미주 특파원
2001년 군사잡지 플래툰 미주 특파원
2002년 일본 군사잡지 암스/거너스 미주 특파원
2006년 미주 중앙일보 편집부 객원기자
2006년 아프가니스탄 종군
2006년 콜롬비아 마약분쟁 종군
2006년 미국무성/국방성 정식 외신기자 등록
2006년 NPPA 등록 프로회원 등록
2007년 종군 사진전 개최
2007년 이라크 종군(바그다드, 모술, 사마와 지역)
2008년 이라크 종군(티크리트, 팔루자, 바그다드, 아르빌 지역)
■ 한국 종군기자란 타이틀이 익숙하지만은 않다.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남다른 계기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종군기자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평소 군사 쪽에 관심이 많아서 미국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플래툰’이라는 군사 잡지에 기사를 썼었다. 그러다가 행사에 참가하게 됐는데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지역에 갔다 온 독일 기자를 만난 게 큰 계기가 되었다. 그 때 그 친구가 보여준 사진이 하나 있는데 전쟁터가 아니면 잡을 수 없는 피사체였다. 한 장의 사진으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피사체를 잡는 것. 기자로서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욕심이다. 더불어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이 확 붙었다. ‘아! 가야겠다.’ 그 때부터 준비해서 미주 중앙일보 객원기자로 들어갔고 2006년도엔 아프가니스탄에 가게 되었다.

■ 전쟁터가 치열한 곳이니만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을 텐데

2006년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분쟁지역으로 알려진 곳으로는 콜롬비아,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분쟁 지역을 다녀왔고 최근엔 이라크에 갔다 왔다.

그동안 생각나는 에피소드라면, 아프가니스탄 갔을 때 일이다. 상관을 만났는데 총검에 빨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무어냐고 물었더니 그 글씨는 ‘아르마니’라는 자신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 전에는 자동차 수리공이었는데 그의 월급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웬만한 의사 월급과 맞먹는다. 그래서 전쟁 전에는 600불 이상 벌었다고. 하지만 전쟁 후 입대해서 받는 월급은 250불이다. 알고 봤더니 그의 형이 영어 교사였단 이유로 탈레반에게 살해당해 그 보복을 위해 입대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사건은 헬기가 불시착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모두 헬기 바깥으로 나와 수비형태를 취했다. 다행히 헬기가 빨리 고쳐져 15분 만에 헬기를 타고 가는데 무언가 물컹한 기분이 들었다. 시체였다. 

이념과 종교, 민족과 자원. 소위 대의명분을 위한 그들의 전쟁은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더욱 비극적인 사연을 낳는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섬뜩하건만 태상호 종군기자는 담담히 전할 뿐이었다. 종군기자는 바로 옆에 폭격이 들이닥쳐도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침착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전쟁 지역을 직접 누비다 보면 이보다 더한 일도 만날 것 같다. 그럼에도 목숨 걸고 분쟁 지역을 누빌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라고 안 무섭겠는가. 속으로 ‘안가도 되는데, 그냥 웨딩촬영이나 하며 살아도 돈 꽤 벌 텐데’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가는 날, 나도 모르게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는 걸 보면 ‘종군 기자가 나의 체질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열정 하나만으로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계획하나

취재하기 위해 어느 한 부대에 가면 다른 기자 같은 경우 2~3일 있을 걸 나는 7일 정도 함께 한다. 그러면서 병사들과 운동 하고 작전을 나가며 아예 같이 행동한다. 그들의 ‘진짜’ 내면을 찍기 위해서다. 그러다 전투에라도 한번 나갔다 같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오면 그땐 완전히 동료가 된다. 어쩔 땐 다른 기자 두고 나만 데려갈 때도 있다.(웃음)

그렇다면 보통 종군기자들도 군의 모든 작전을 함께 하나

종군기자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호텔기자’와 ‘본격적인 종군기자’. 호텔 기자란 호텔 안에서 모든 기사를 완성해 본사로 보내는 기자를 말한다. 부대는 매주 수요일, 프레스 관련자를 초대해 브리핑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쟁터에 파견된 기자 중 호텔에 있다가 여기에만 참석해 주는 자료만 받고 호텔 안에서 모든 기사를 완성 한다. 나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군인들의 수색, 매복 작전도 함께 나간다. 그래서인지 ‘본격적인 종군기자’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전쟁, 군사 쪽에 ‘취미’가 있어 플래툰이란 군사전문 기자로 활동한 그는 편집장이 구비해준 캐논 카메라를 쓰면서 직업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고 한다. 본격적인 ‘종군’기자를 고집하는 그에게 종군‘기자’의 모습을 물었다.

이라크 전쟁 때 보도사진 왜곡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창 논란이 일었다. ‘제대로 여론을 조성할’ 보도사진 한 장이 엄청난 보답으로 돌아오니 유혹도 많이 느낄 법 한데

기자 욕심이다. 물론 나도 느낀다. 내 사진 중에 가장 많이 사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사진은 미국 소령이 총을 왼손에 들고 뒤를 돌아보며 오른 손으로 아이 머리를 대고 있는 사진이다. 얼핏 보면 군인이 어린 아이를 억압하고 있는 사진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뒤에는 작전 차량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이때 교전이 있어서 소령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내보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사진을 사고 싶어 하는 반전 단체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말하면서 내주지 않았다.

보도사진만큼 그 장면을 정확히 담을 수 있는 수단도 많지 않지만 이를 악용해 의도된 사진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일부러 의도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있다. 원근감을 이용해 총을 아이에게 겨누고 있는 것처럼 꾸미기도, 아이가 돌멩이를 들고 서있는데 미군을 향해 부르르 떨고 있는 듯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양쪽간 갈등이 심한 지역은 그런 사진이 나올 수 있으니 왜곡보도가 판친다고 할 수 없겠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종군기자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란 것이다. 자기 목숨 걸고 나오지만 돌아가는 돈은 다른 기자와 비슷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터에 왔다는 것은 기자로서 욕심이 무지 크다는 것이다.

플래툰과 일본 군사잡지에서 활동하다가 미주 중앙일보 객원기자로서 경력을 쌓을 때 일반 취재기자로 들어오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정식으로 기자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큰 언론사의 기자가 되면 쓰라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에 관심이 많아 시작한 경력인데 종군기자로서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어떤 피사체에 초점을 맞춰 취재하는지

처음에 종군기자를 시작할 때 군사잡지 전문기자였을 당시니까 군사 사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가 얘네들이 왜 싸우지 궁금해 하니 애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피사체가 넓어졌다는 얘기다. 요새는 오히려 전쟁터에서 볼 수 없는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가령 전쟁터에서 애기들이 웃고 있는 사진같이. 오히려 어떻게 보면 있을 수 없는 곳에서 희망이 보이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쉽지도 않고 지원도 많지 않은 직업이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앞서 말했듯 전쟁터에서 엉망진창이지만 웃는 아기들 사진을 찍어 책을 내고 싶다. 전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데 시체사진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번 분쟁 지역으로 레바논을 가려고 했는데 소말리아에 가게 될 것 같다. 지금 해적 문제가 불거져 3개월 정도 뒤면 한국 해군도 곧 갈 예정이다.

순간 전쟁이 없다면 종군기자라는 직업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퓰리처상이나 그에 버금가는 보도사진 관련 상 욕심도 살짝 내비쳤던 그다. 전쟁이 없어지기만을 바랄 순 없는 직업이지 싶어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한 독일 기자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으니 우린 이젠 굶어 죽겠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대답했다. 삶 자체가 전쟁이 아닌가. 최근에 안성기씨와의 활동으로 필리핀의 마닐라 빈민촌을 갔다. 이곳에서 소아암 환자를 돌보는 병원 등을 둘러보며 꼭 전쟁 지역만 전쟁이 아니란 걸 알았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 보지 못하는 곳의 고군분투를 찍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