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남(문헌정보) 강사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란 영화로 너무나 친숙한 시애틀의 하늘에는 일 년에 반 이상이 잔득 찌푸린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아래로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누가 우산을 준비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비옷과 우산을 가방에 찔러 넣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시애틀에서 차를 타고 조금 가면 벨뷰라는 도시가 나온다. 그 곳을 가기 위해선 긴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그 다리를 지날 때 오른쪽과 왼쪽에 보이는 강의 모습이 다르다. 특히 흐린 날이면 한쪽은 심한 파도에 물보라를 일으키면 사납게 휘몰아치고 다른 한쪽은 이상하게도 잠자는 아이 같이 잔잔하게 보인다. 처음 벨뷰에서 시애틀로 버스를 타고 통학 할 때면 버스 창가에 붙어 이 광경이 너무 신기해서 창 너머로 두리번거리곤 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기쁨과 슬픔도 그리고 희망과 좌절도 모두 반의어는 아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함께 공존하고 있고 역시 이것 또한 삶의 한 모습이다. 그리고 시애틀에서 벨뷰를 건너가기 위해 꼭 건너가야 했던 강처럼 사나움과 잔잔함도 어쩌면 인생에서 누구나 다 지나쳐야하는 과정인 듯하다. 그리고 이 순간 둘 다 존재하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면 그 자리에 있는, 그것 역시 같은 근원에서 흘러온 같은 물줄기임을 깨닫는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교정으로 돌아왔다. 비록 새로운 것들에 학교가 많이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 그때 기억이 교정의 이곳저곳에 묻어 있다.

내가 20대를 시작하면서 낯익은 곳을 지날 때면 마치 그때의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친구들과 도서관 앞에서 수업이 끝나고 삼삼오오모여 수다를 떨던 곳. 삐삐만 있던 시절 온 음성을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에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곳.  돌아보면 그곳에 내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앞만 보며 달려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를 힘들게 하던 이 파도도 잔잔해져 가리라고. 그런데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변함없어 보인다. 파도 옆에 잔잔함이 바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파도가 바뀌어 잔잔한 반대쪽 모습으로 살아가길 꿈꾸면서 있는 듯하다.

실업 공화국의 치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누구하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오늘도 학생들과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보면 바쁘게 살고 있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강의 양쪽을 보며 건너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쳐주고 싶다.
‘무조건 앞을 향해 달리지 말고 꿈을 꾸면서 달려가라고, 아직 그냥 달리기만 하기엔 너무 젊고 인생을 길다고. 그리고 강의 반대편도 바라보라고 바로 옆에 있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