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정미 기자 (sky79091@skku.edu)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일 년 남짓한 서울살이는 조금씩 지겨워졌고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지쳐갔다. 빠르게 흐르는 삶속에서 무감각해진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느리게 숨 쉴 곳이 필요했지만 서울의 탁 트인 공간 어딘가에는 여전히 너무도 쏜살같이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감성을 찾기 위한 아우성은 상념 없이 떠도는 방랑자의 삶을 동경하게 했다.

무신경하게 죽어가는 감성의 세포들을 지닌 채로 그렇게 나는 떠났다. 고향 근처에 위치한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을 향해. 눈을 자극하는 거센 황사바람 속에서도 마을은 너무도 평화로웠고 돌담길 사이로 보이는 전통 가옥은 옛 정취를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통 쌀엿의 달달함이 입 안 가득 고인 채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늑한 돌담길을 걷다 보니 시간마저 쉬어가더라. 마을 주민들의 소탈한 미소와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의 반가운 인사에 딱딱하게 굳은 감성이란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복원공사 중인 삼지천과 시멘트가 발라진 돌담길을 보면서 다시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인위가 가해지지 않아야할 느림의 마을에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고택들은 한적한 시골마을을 황량하게까지 만들었다. 느림이 비어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닌데도 자꾸만 이곳의 느림은 공허하게 느껴졌다.

밝게 빛나는 도시의 인공조명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웠던 마음과 녹았던 감성은 다시 응어리졌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내밀었던 발걸음은 어떤 이유모를 중압감 때문에 너무도 무거웠다. 뼛속까지 시리는 허무를 동경하는 니힐리스트가 된 것 같은 기분에 그저 슬프기까지 했다. 진정한 느림의 의미 안에서 감성의 맥박마저 천천히 뛰는 어딘가로 또 다시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