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회 인권영화제 스케치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edu)

여기 ‘기막힌’ 사람들이 모였다. 인권영화도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기막힌 세상이지만, 끝내 인권영화를 상영하자는 기막힌 사람들, 그리고 위태롭지만 인권영화제 개막을 성사시킨 이들의 기막힌 열정.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제14회 인권영화제가 지난 27일부터 4일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다.



액땜이라고 하기엔 참 우여곡절도 많았다. 상영관을 빌리지 못해 거리 상영만 올해로 3년째. 현행법상 극장 임대를 받기 위해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정부의 사전검열을 거쳐야 되므로 인권 영화제 측에서는 일절 거부 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의 일환인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는 영화제에서 사전검열이 웬 말이냐. 그래서 이들은 올해 또 다시 거리로 나섰다.

지난 27일 인권 영화제 개막식을 다녀왔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 공연장에서 분주히 개막식을 준비하는 자원 활동가들 그리고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건네고 있던 자원활동가 정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주셔서 기쁘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영화제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눈에 띄었다. 무대 위에는 사회자 두 명과 함께 수화 통역사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한글문서 창이 떠 있었다. 사회자가 말을 할 때마다 수화 통역사는 수화로 그들의 말을 전했고, 스크린에서는 사회자의 말을 일일이 타자기로 쳐 문자 통역을 하고 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에, 이들의 접근법을 확보하기 위해 인권영화제에서는 매년 이런 식으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줬다. 또한 관객이 앉는 의자 뒤에는 ‘사람은 모두 VIP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렇게 최소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고 평등했다. 그리고 모두 다 인권을 보장받고 있었다.

50여 분의 개막식이 끝나고, 개막작 영화 『눈을 크게 떠라- 좌파가 집권한 남미를 가다』가 상영됐다. 이 영화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선진국의 중남미 착취를 비판하는 책 『라틴 아메리카의 노출된 혈관들』을 건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신자유주의 유산과 싸우는 라틴아메리카 대중과 각국의 정부가 이루려는 사회적 연대건설에 초점을 맞춘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인권영화제 총 기획자 김일숙 활동가를 만나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작품이 좋아서요”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나흘 동안 다른 주제를 갖고 진행된 인권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첫째 날 ‘자유ㆍ평화의 날’, 둘째 날 ‘소수자의 날’, 셋째 날 ‘자본ㆍ저항의 날’, 그리고 마지막 날 ‘빈곤ㆍ노동의 날’. 이렇듯 다방면의 인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투쟁하는 이들의 열정이 돋보였다. 김 활동가는 “우리의 다른 생각을 지지하는 분들 역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영화를 보고나서 느낀 인권에 대한 감정들을 잃지 말고, 심지가 계속 남아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녀의 말처럼 인권영화제를 통해 조금의 희망을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