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양육의 경게 부수고 조화 이뤄야

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지난 8월 27일 호주의 한 병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7주 만에 태어난 한 미숙아가 태어난 지 20여 분 만에 숨을 거두었으나 어머니의 품에서 두 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실로 어머니의 모성애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모성애는 지극히 당연한 사랑인걸까?


‘신이 인간을 모두 돌보지 못해 엄마를 대신 보냈다’는 말처럼 현 인류가 존재하기까지 엄마와 그 안의 모성애는 필수 불가결한 관계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모성애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본능적인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는 몸 안에 설계된 장치들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생체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로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그리고 유전적인 영향이 있다. 2008년 미국의 한 연구팀은 자녀가 웃는 표정을 볼 때 엄마의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관찰했다. 엄마의 뇌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만들어졌고 이 물질 때문에 아이 엄마는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도파민의 수치가 높아지게 되면 쾌락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호르몬이 모성애를 유도하기도 한다. 옥시토신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으로, 옥시토신이 부족한 동물이 자신의 새끼를 덜 핥아준다는 실험 결과와 옥시토신량과 아이에 대한 애착도가 비례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경우가 생화학적 측면의 본능적 모성애였다면, 유전학적으로 모성애를 자아내게 하는 장치도 여성의 몸 안에 내재돼 있다. 90년대 후반 발견된 메스트(Mest) 유전자가 바로 그것인데, 메스트 유전자가 결핍된 쥐의 경우 태아의 자궁 내 발육 지연과 새끼를 돌보지 않아 대부분의 새끼를 죽게 하는 비정상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렇게 모성애는 종족보존을 유리하게 하는 자연의 위대한 소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성애가 엄마라면 반드시 발현돼야만 하는 본능적 사랑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지난 7월 일본의 한 여성이 자신의 두 아이를 집안에 방치해 아이들이 굶어 죽는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은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집을 나가 평상시처럼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화는 모성애가 몸 안에 내재돼 있어 ‘발현될 수밖에 없는’ 성질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본능에 의한 모성애의 불완전성 때문에 경험주의 학자들은 양육에 의한 모성애를 주장했다. 양육에 의한 모성애는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출발되는데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 무의식에 의해 행동한다. 후에 많은 학자들은 본능보다 상황의 요구나 압력이 인간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즉, 인간은 환경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환경의 지대한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는 것이다. 앞의 일화에서 그녀가 아이를 방치한 이유를 살펴보면 그녀 역시 불우한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두 아이를 낳은 뒤 이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흥업소를 다녔다. 결국 집에 오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아이에 대한 애착이 줄어들었다.

이렇듯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은 본능과 양육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대립구도 속에서 영국의 과학 저술가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색다른 절충점을 찾아낸다. 그는 자신의 저서 『본성과 양육』에서 <양육을 통한 본능 이론>을 제시하면서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리들리는 본성과 양육의 화해를 주도하며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리들리가 마련한 본성과 양육의 화해의 장에서 모성애를 바라볼 수 있다. 바람직한 모성애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그의 말처럼 본성과 양육이 조화롭게 이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