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김정일리아』

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한 번쯤 텔레비전에서 북한 무용수들이 나와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굴을 하얗게 화장하고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복장으로 춤추고 노래를 한다. 그들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아 보는 이가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그러나 북한 무용수였던 한 여성의 말은 우리의 환상을 단번에 산산조각 내버린다. “배가 고파도 배부른 척, 괴로워도 행복한 척했어요. 그때는 어떻게 그랬는지 저도 이해가 안 가네요”
영화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다짜고짜 탈북자들이 나와 김정일 체제를 비판하고 증오한다. 자신의 모든 피붙이를 죽음으로 밀어 넣은 김정일을 용서할 수 없다는 한 여성의 볼에는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또 다른 이는 “그런 사람(김정일)이 범죄자가 아니면 과연 어떤 사람이 범죄자일까”라며 울분을 터뜨린다. 초반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영화는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 N.C. 헤이킨은 13명의 탈북자의 입을 빌려 74분 동안 차근차근 북한의 실체를 드러낸다. 다큐멘터리『김정일리아(Kimjongilia)』이다.
김정일리아는 김정일 위원장의 46번째 생일을 맞아 일본의 한 식물학자가 그에게 선물한 꽃의 이름이다. 이 꽃은 △사랑 △평화 △지혜 그리고 △정의를 뜻하지만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영화 어디에서도 사랑이나 평화 혹은 지혜나 정의 따위를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제목과 내용의 부조화처럼, 영화 속 장면들은 부조화의 연속이다. 인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풀이며 나무껍질을 뜯어 먹고 쥐를 잡아먹으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지만 북한의 선전용 광고에는 농산물이 가득해 행복이 넘쳐난다. 광고 속 인물들은 노래하며 이렇게 잘 살게 해준 김정일 위원장님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맹세도 마지않는다. 터무니없는 광고에 피식 웃음이 날만도 하지만, 삽입된 광고 전후로 이어지는 탈북자들의 목숨을 건 증언은 관객의 웃음기를 말끔히 앗아간다. 그것은 그저 터무니없는 내용이어서가 아니다. 결코 광고처럼 살 수 없는 인민의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성스레 조각한 유리알처럼 그저 우리는 예쁜 무용수와 강경한 핵개발 정책, 그리고 군복을 입은 채 지시하는 김정일과 그를 숭배하는 인민들의 모습만을 봐왔다. 그러나 실상 유리 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것은 번지르르하게 조각된 허울뿐임을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배추처럼 심어놓은 인민들’이 유리알 안을 꽉 채우고 있다.
작은 공장과 마을이 하나의 수용소로 묶여 있는 나라, 공개처형을 어린아이들이 강제로 봐야 하는 나라, 하나님 대신 김정일을 신으로 믿어야 하는 나라를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해의 여부가 아니라 이해를 위한 노력이다. 탈북한 그들도, 유리알에 갇힌 인민들도,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도 사랑, 평화, 지혜 그리고 정의를 소망하는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역사 속에 잠든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는 현존하는 14개의 북한 수용소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