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섭(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국제비즈니스와 무역 관련 강의와 연구를 오래 동안 해 오다보니, 핵심적인 문제는 時間(시간), 空間(공간) 그리고 人間(인간)의 세 가지 間(간)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공간의 극복은 운송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엘리베이터, 자동차, 선박, 기차, 비행기, 파이프라인. 이들은 모두 운송수단인데, 파이프라인 빼고 나머지는 사람과 화물을 운송대상으로 한다. 거리로 따지지 말고 횟수로 볼 때, 도시인이 하루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아마 엘리베이터가 아닌가 싶다.
땅위의 자동차, 기차, 바다위의 선박, 바다 속의 잠수함, 하늘위의 비행기, 지하의 파이프라인.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건물속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빨리 갈려고 이런 운송수단을 부단히도 개발해 왔고, 지금도 그 사정은 여전하다.
세상은 정보기술과 운송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게 빨라지고 있다. 이렇게 빠른 생활에는 생각도 빨라 질 수밖에 없다. 느릿느릿 땅도 보고 하늘도 보고 걷다보면 생각이 깊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정보기술은 時(시)의 間(간)을 메우려고 하고, 운송은 空(공)의 間(간)을 메우고 있다. 이들 덕분에 삶은 편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人(인)의 間(간)은 더더욱 벌어져 가고 있다. 디지털적인 간격은 줄어들지 몰라도 아날로그적 간격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기원 전 287년 그리스 공학자 아르키메데스가 개발한 도르래가 사람까지 들어 올리는 엘리베이터의 시초라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현재와 같이 발전하게된 것은 19세 후반 들어서 이다. 1852년 엘리샤 그레이브스 오티스가 발명한 낙하방지 장치에 힘입어, 1857년 뉴욕의 어느 매장에 최초의 승강기가 설치되었는데, 분속 12미터의 속도로 5개 층을 운항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운행대수로 볼 때 세계 8위의 엘리베이터 강국(?)이다.
지금 명륜캠퍼스의 정식 출입구는 몇 개일까? 정문, 삼청동 가는 후문, 대성로에서 옆으로 빠지는 문, 다산경제관 입구 맞은 편 담 옆의 문, 그리고 도서관 부근의 엘리베이터 있는 문.
70년대 이후 우리 대학의 시설 중에서 가장 큰 발전을 보인 것은 무얼까? 첨단 강의실, 600주년 기념관, 도서관, 보건진료소, 아이캠퍼스, 셔틀버스 등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도서관 부근에 2007년 10월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이다.
70년대에는 지금의 이 엘리베이터 근처에 거주했던 다수의 학생들은 월장을 하거나 누군가가 담을 부수고 파낸 구멍 (개구멍?)을 통과해 흙길로 힘들게 올라와 강의실이나 도서관에 가곤 했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이 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이런 열악한 상태의 진입으로 거의 여학생은 이 쪽으로 등교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숙비나 방세가 정문 근처 보다 싼 뒷문 근처에 많은 학생이 거주했는데, 정문을 통과해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개구멍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 학생의 구멍 파기와 학교의 구멍 막기가 반복되었다. 그 후 문이 생기고 계단도 생겼다가, 드디어 2007년 10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당시 입학한 동창생들이 오랜만에 어쩌다 방문하면 정문으로 와 600주년 기념관을 보고 놀래지만,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하면 더더욱 신기해하면서 흐뭇해한다.
오늘도 이 부근을 지나다 엘리베이터를 타나 계단으로 가나 잠시 고민을 하면서, 이런 과거를 엘리베이터 이용 학생들은 알까 하는 생각과 엘리베이터 설치로 이 부근의 지역경제는 얼마나 활성화 되었을까하는 엉뚱한 의문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