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현성 편집장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환경과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착한 패션잡지 <OhBoy!(오보이, 이하 원문으로 표기)>. 무료 배포 1인 잡지라는 놀라운 수식어를 차치하고도 그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연예인과 유기견이 짝을 지어 등장하는 의류 화보부터 환경을 위해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는 배려까지. 여기에 독특한 감성을 지닌 표지 사진까지 더해져 그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 중이다. 1년을 갓 넘긴 짤막한 역사가 무색하도록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는 얇지만 또렷한 목소리. <OhBoy!>의 편집장 김현성 씨를 만나봤다.

#1. 시작은 사진작가

■ 조소과에 진학한 후 갑자기 사진작가가 됐다. 중간 과정이 궁금하다
삼수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 디자인과에 지망했지만 낙방했다. 집안의 압박도 있고 천년만년 공부만 할 수 없으니 일단 그 당시 합격선이 약간 낮았던 조소과로 진학했다. 그러다 사진작가 김중만 씨를 우연히 만났다. 카메라 기종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분의 어시스트로 1년 반쯤을 일하고 나니 “사진을 하려면 제대로 해봐라”하시더라. 그 후 샌프란시스코로 유학 가 5년 간 사진을 공부했고 97년도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 <OhBoy!> 표지 사진은 고유의 느낌 속에서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패션 사진은 무엇인가
패션 사진도 개인적인 사진도 일단은 솔직한 사진. 패션 사진은 사람들을 구매로 연결 지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장치를 한다. 배경을 멋지게 꾸민다든가 유명 연예인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든가. 그런 복잡한 것들이 내 성격과 안 맞는다. (흰 벽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많은데) 흰 벽에서 찍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스튜디오에 흰 벽이 있으니 흰 벽에서 찍는 거다. 검은 벽이었으면 검은 벽에서 찍었겠지(웃음).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원초적인 주변 상황이 난 좋다. 배경이 단순하면 인물 자체에 집중할 수도 있다. 아주 섬세한 손동작이나 눈동자 방향, 머리카락 하나에도 신경 쓰게 되더라.
 

#2. 동물과 환경, 이타적 삶을 위하여

■ 패션 사진작가로서 동물 보호 활동을 한다는 데에 모순을 느꼈다고 들었다. 그 괴리가 본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모피광고를 한 번 찍었는데 굉장히 괴로웠다. 내가 안 찍는다고 알아주지도 않고 누군가는 분명히 찍을 거라며 나름 합리화를 하긴 했지만. 그 광고를 찍고 받은 돈은 동물단체에 기부했다. 물론 어디서 나온 돈인지는 비밀로 했다. 패션업계는 모피산업이니 제조업이니 자연을 해칠 수밖에 없다. 나도 먹고살기 위해 패션을 했지만 나 아닌 존재들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괴리감 같은 것은 항상 느낀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기도 먹고 가죽으로 만든 신발 신고. 어떻게 보면 좀 이율배반적인 것이지 않나. 요새는 고기도 끊고 가죽으로 된 구두나 운동화는 피하고 있다. 차가 있긴 하지만 되도록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하고 있기도 하고.

■ 동물자유연대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
어머니가 한때 유기견을 30마리 넘게 키웠는데 그 무렵 동물자유연대와 자연스러운 교류가 생겼다. 그러다 내가 사진을 한다고 하니까 유기견 캠페인 사진 촬영 같은 일로 도움을 청해왔다. <OhBoy!>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잡지에 들어갈 콘텐츠를 제공받으면서 계속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유기동물 구조와 입양 주선이다. 거기에 법안개정운동까지 병행하고 있고. 유기 동물 환경관련 법안들에 대해 관련 단체나 국회에 법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어필을 하고 대원끼리 세미나도 한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의 인식에 호소하기 위해 이게 가장 중요한 일 같다.  

■ 동물권과 인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사람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동물도 서로 약육강식을 하긴 하지만 영장류인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만듦으로써 말이다. 그런 입장에서 인권과 동물의 권리에 차별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라는 말이 내겐 가장 무섭고 속상하다.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 동물의 복지와 사람의 복지. 모두가 다 중요하다. 동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 균형을 맞춰 사는 거다. 그냥 그렇게 각자 자기가 마음이 가는 약한 존재를 도우면 된다. 이건 동물이고 사람이고를 떠나 약자에 대한 문제니까. 둘을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불필요한 일인가.

■ 일반인이 동물들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동물을 돈을 주고 사지 말아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에 값을 매겨 사고판다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 어린 강아지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산하고, 그렇게 늘어난 공급이 유기견 문제로 이어진다. 그 악습을 끊는 게 가장 시급하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한 번만이라도 동물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것.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니라 소 돼지도 마찬가지다. 그 동물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그 열악하고 좁은 공간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처참히 죽어가야 하나. 풀밭에서 뛰놀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동물이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순간에 고통 없이 보내고 그 고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건 괜찮다. 근데 요새 돼지들은 일 년도 안 키운다. 닭도 그냥 살게 하면 수명이 35년인데 맛있는 육질을 위해 한 달 반 만에 죽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신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배고파서 흙이랑 나무 조각이라도 주워 먹어야 하는 고양이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고양이들이 쓰레기통 좀 뒤진다고 신경질을 내거나 해충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진 않을 텐데.

■ 동물권 보호에 대해 지나치다며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예민한 사안인데 그들을 설득해 동물 보호에 동참시킬 방법이 존재할까
동물 자유연대 사람들이나 동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꼭 하는 얘기가, 동물을 안 좋아하고 그런 사안에 부정적인 사람들을 바꾸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너희를 먼저 바꾸란 거다. 내가 보기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금 문제가 더 크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랑 생각이 다르다는 걸 인정 못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네가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를 남들이 함부로 대하고 무관심하다는 데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바탕으론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당장 변화를 바라진 않는다. 내가 죽고 백 년 이백 년 후의 사회가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할 뿐이다. 사람 사는 게 더 삭막해진다고 가정했을 때 동물의 권리라는 건 절대로 소중히 여겨질 수 없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다. 그래야 동물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3. 오! 나의 사연 많은 잡지

■ 식상한 질문이지만 <OhBoy!>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자식 같던 먹물이, 밤식이가 죽고 나니 동물 좋아하고 환경 생각하는 내 마음으로 세상에 좋은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졌다. 유기동물이 처한 극한의 상황을 찍어 알리는 방법도 있지만 못하겠더라. 사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동물의 왕국’도 잘 못 본다. 잡아먹고 잔인하고 이런 거 너무 불쌍해서. 그럼 잡지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OhBoy!>를 시작했다. 그 후로 반응도 좋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성대신문>에서 와서 인터뷰할 정도니까.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바로 변화인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봐야지.

■ 1인 잡지인 만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혹시 1인 잡지라 좋은 점도 있는지
오히려 1인 잡지이기 때문에 열여섯 권이나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섭외 △촬영보다 어려운 게 소통이니까. 내 머리에 있는 것들이 곧바로 디자인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단순함은 꽤 매력적이다. 하지만 1인 잡지는 당연히 힘들다. 취재와 촬영에 필요한 인력을 혼자 섭외하고 일정을 맞추는 게 만만찮다. 제일 힘든 건 역시 광고영업. <OhBoy!>가 무가지이기 때문에 광고를 유치하지 않으면 발행하기 어렵다. 예전에 사진 일만 할 때는 기자나 광고주가 사진 찍어달라면 펑펑 찍고 원고만 던져주면 됐지만 이건 내 쪽에서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남의 돈 만 원 쓴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일이다.

 윤이삭 기자
■ 읽다 보면 어느새 동물 복지, 환경 보호 등 무관심하던 주제들에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눈 녹듯 사람 마음에 파고들어 사고체계에 변화를 주는 비결이 있다면
진짜 모르겠다. 그냥 난 원하는 게 있을 때 그걸 강요하거나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편하게 한다. 그러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기는 것 같다. 환경이나 동물복지에 대한 잡지는 많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상업적 느낌이 없으니 그 분야에 딱히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안 본다. <OhBoy!>는 동물복지와 환경을 바탕에 깔면서 연예인 인터뷰나 풍경 사진 같은 다양한 요소가 있으니까 여러 사람이 본다. 일단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OhBoy!>가 많이 유명해졌다. 우려되는 점은 없을까
아직은 없다. 어떤 △매체든 △사람이든 △주장이든 모든 것에는 반작용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나도 솔직히 걱정을 안 한 건 아닌데 신기하게도 여태까지 그런 반응이 전혀 없다. 인터넷 문화란 게 참 살벌한데도 블로그나 트위터 모두 긍정적인 면을 봐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내가 부정적 마음을 가지고 대응하거나 강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게 뭐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 다르단 걸 고려하면 화가 날 수가 없다. 그냥 이렇게 더불어 사는 거지 싶다.

■ <OhBoy!>도 에코마케팅이라 불리는 것의 일환인가? 국내 에코마케팅은 그 의도가 변질한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유행이긴 하다. 기업도 브랜드도 환경이나 동물 복지관련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으니. 의미 있는 주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선 괜찮은 것도 같다. 이런 쪽 환경이 안 좋으니까 그런 마케팅이 주목받는 거니까. 문제는 에코마케팅이 도구에 그치는 경우다. 다른 마케팅 수단이 나타나면 사라질 것 아닌가. 환경이나 동물복지는 이윤을 떠나 항상 기업과 브랜드가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당분간은 에코 관련 유행이 사라질 것 같진 않다. 만약 사라진다 해도 ‘선행’과 관련한 마케팅은 계속됐으면 좋겠다. 내가 환경과 동물 복지 쪽으로 연결하면 되니까. 나 혼자라도 계속 노력할 거다.

■ 무료 배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약간의 가격을 책정한다면 그 수익금을 좋은 일에 쓸 수도 있을 텐데
말이 패션 잡지지 이건 아주 크고 두꺼운 광고전단이다. 그 광고지를 돈을 주고 사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만드는 사람은 만들고 △그 재원은 광고주가 대고 △그걸 무료로 공급받은 독자가 물품을 소비하고 △광고주는 광고효과를 누리는. 그게 잡지의 기본 구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익금을 좋은 일에 쓸 수 있지 않느냐,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단돈 몇백 원으로 생기는 이득보다는 무료로 편하게 가져가는 데서 생기는 광고효과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4. 이번엔 좀 개인적 이야기

■ 김현성 씨의 이십 대 시절이 궁금하다
그땐 동물이나 환경에 대한 생각은 거의 안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나 자신만을 위한 걱정뿐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성공에 대한 막연한 허영심이 많았었다. 시각적으로 아주 멋진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날 멋있다고 여기게 하고 싶단 욕심만 있었지 인생의 큰 그림이 없었다. 아주 편협한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 허영심이 쫙 빠진 것 같은데) 그게 다 동물 좋아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원래는 옷이며 장신구에 자동차까지 온갖 외적인 거에 대한 욕심이 엄청났다. 하지만 졸업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약한 존재에 대한 생각이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나를 꾸미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게 부질없어 보였다. 지금은 모든 소비생활을 거의 멈췄다. 고기도 끊고 옷도 선물 받은 거 입고. 그러고 보면 진짜 아이러니한 것 같다. 내가 이런 분야에서 이런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 달라
<OhBoy!>를 계속 만들면서 직접 유기동물을 돕는 일도 병행하고 싶다. 현장을 찾거나 유기견 보호 시설을 만든다든가. 어떻게 보면 잡지 만드는 일에 비해 동물을 복지를 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과 동물에게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해나가겠다.
 

#5. 캠퍼스 위 청춘에 고한다

■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대학생들이 기성세대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지금의 학생들을 너무 많이 눌렀고 사회 구조도 힘들게 만들어 놨다. 고민도 많을 테고 여러 가지로 막막할 거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픈 얘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좀 더 불행하고 약한 존재를 위해 써달라는 것이다. 그 생각들이 모여서 나중에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걱정거리, 고민거리가 많다 해도 자기보다 훨씬 더 절박한 존재들을 돕다 보면 자기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으니까.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