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나이트쿠스 체험기

기자명 김희연 기자 (ohyeah@skkuw.com)

유오상 기자 osyoo@skkuw.com
3일이 4일로 바뀔 즈음의 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이 아닌, 집을 떠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행선지는 호모 나이트쿠스(homo-nightcus)가 살아 숨 쉬는 동대문 새벽시장.
오전 12시 30분. 언뜻 보면 아직도 저녁 8~9시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활기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밀리오레 옆길의 한 미용실. 대략 3명의 손님이 머리 손질을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머리로 시작하는 셈이다. 근처에서 일하다가 이 시간에 자주 온다는 어떤 손님은 오늘은 쉬는 날인데 습관이 돼서 왔단다.
이처럼 밤에 오는 사람들은 주로 야간에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중고등학생도 와요. 술 취한 사람이 올 때도 있고” 끊임없이 가위를 짤깍이던 미용사는 손님의 머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설명한다. 그도 남들이 출근할 때 퇴근하는 호모 나이트쿠스다. 자기도 요즘 늦게 자서 피곤하다는 손님의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친다. “늦게 자는 거랑 차원이 다르죠. 일주일만 한 번 바꿔 봐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기서 배달이 온다. 지금은 새벽 1시 반. 아 식사시간이구나.
미용실을 뒤로하고 들른 곳은 관광안내소였다. 두 명의 가이드가 길 잃은 호모 나이트쿠스를 위해 늦은 시각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원래 관광안내소가 이렇게 늦게까지 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즈음 한승호 통역관의 설명이 이어진다. “오전 9시에서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게 보통인데, 저희는 특이하게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해요” 그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명예 일일 나이트쿠스로서 야식을 맛보지 않을 수 없어 청평화시장 옆의 한 쌈밥 집을 들렀다. 여느 식사시간만큼이나 많은 호모 나이트쿠스들로 한참 붐빈다. 야심한 새벽, 쌈에 싸먹는 제육볶음의 뜨겁고 매콤한 맛에 졸음이 달아난다. 밥을 먹고 충전한 기(氣)를 수다로 풀고 있는 손님들과는 다르게 직원들은 모두들 피곤해 보인다. “일 하는 사람 중엔 중국인이나 재외교포가 많지. 밤에는 다들 일 안 하려고 해”라는 한 직원의 설명에 문득 씁쓸해진다.
주린 배를 채우고 근처의 커피숍을 들어갔다. 옆에 쇼핑백을 쌓아두고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들,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밀린 과제를 하는 듯 열심히 뭔가를 읽고 쓰는 학생, 노트북을 보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계속 쿡쿡대는 사람들…. 모습도 하는 일도 제각기 다른 호모 나이트쿠스에게 마치 이런 일은 일상처럼 보였다.
어느덧 시각은 3시 30분. 거리는 부쩍 한적해졌다. 여전히 화려한 LED로 알록달록 빛나는 거리에, 그 많던 ‘소비자’ 호모 나이트쿠스은 어디로 갔는지, ‘장사하는’ 호모 나이트쿠스만이 저마다 커다란 보따리 하나씩을 짊어 멘 채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허겁지겁 물어왔다. “여기 맥스타일이 어디예요?” 알려 드린 곳으로 다시 바삐 뛰어가시는 뒷모습에, 커다란 분식집 봉지가 보였다. 그녀는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빛을 볼 수 있을까.
‘지금 뭐하세요?’ 문득 생각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봤다. ‘드르륵-’ 1분도 안 돼 연이어 진동이 울렸다. 아아. 사실 우리는 모두 호모 나이트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