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태(통계)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는 보통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 대해 막연한 부러움을 느낀다. 심지어 한국에서 한국어는 못하지만 영어를 하는 잘하는 외국인을 보고도 부러움을 느낀다. 사실 영어로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한국인으로서는 그가 누구든 영어만 잘하면 부러워하게 된다. 특히나 필자와 같이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한 사람의 경우는 더 할 것이다. 미국생활에 있어서 일단 기본적인 의사소통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면서 모든 것에 있어서 점점 소심해지고 자신감을 잃어가고 나중에는 영어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공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필자의 미국인 박사지도교수는 통계학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학생 중 미국인은 거의 없다. 그에게는 전공지식에 해박한 학생이 필요한 것이지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박찬호 선수나 김연아 선수가 영어를 잘해서 그렇게 성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영역에서의 우수한 기량이 먼저 있었고 그리고 영어는 그 기량을 더 돋보이게 하는데 기여한 작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항상 잘하는 자기만의 뭔가가 있고 그 위에 영어능력이 덧붙여졌을 때 그 능력이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당연히 단순히 영어시험을 잘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보통은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창하다는 것은 흔히 미국식 영어 CNN 방송앵커의 억양과 비슷하면 유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것이 유창함의 사전적 정의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유창한 영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세계 영어사용 인구 중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영어 공부 특히 회화를 할 때 흔히 발음과 억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사실 이것은 중요하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필자의 초기유학시절에는 스스로 내 발음이나 억양이 창피하다고 느껴져서 소심해지고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발음이나 억양에 100% 자신이 없다고 소심해질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한 발음과 억양으로 영어를 말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아마 한국어 발음이 뒤틀리는 부작용을 경험할 것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영어하는 것을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CNN식 유창한 영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UN을 원활하게 이끄는데 아무 지장 없는 영어 그리고 영어로 우리가 동경(?)해마지 않는 영어 잘하는 미국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한다. 미국에서 수업들을 때 한 중국인 교수가 있었다. 그의 영어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유창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어투 또한 느리고 어눌했다. 하지만 미국인 누구나 그의 말을 이해하고 그 또한 아무런 언어 장벽 없이 미국인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그의 말은 항상 논리적이고 명확해서 좌중을 주도할 수 있었다. 나는 콩글리쉬 발음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표현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영어가 문제일 뿐이다.
영어논문을 많이 써야하는 필자에게 있어서는 사실 말보다는 영작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그리고 이 영작을 잘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표현을 문법에 맞게 제대로 구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맞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영작을 한다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 보여줄 글을 단지 영어로 쓴다는 것인데 어떤 언어로 어떤 글을 쓰던지 작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글의 논리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성은 영어공부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느껴진다. 이는 국어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 혹은 어떤 언어로든 글을 많이 읽고 써본 사람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 궁극적 목적이다. 영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 그러한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목적을 위한 여러 중요한 도구중의 하나일 뿐이다. 물론 항상 모두 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영어와 전공 둘 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영어는 80점 전공은 100점을 맞았으면 좋겠다. 유창함과 의사소통 모두 100점을 받을 수 없다면 유창함은 80점 의사소통은 100점을 맞았으면 좋겠다. 논리성과 표현력 모두 100점을 받을 수 없다면 표현력은 80점 논리성은 100점을 맞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할 때 이러한 점수배분을 종종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