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는 아프리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가장 쉽게 아프리카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TV에서 봤던 ‘동물의 왕국’이나 저 멀리 아프리카 초원에서 아직도 전통적인 삶을 사는 부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서 일게다. 물론, 최근에 유명 연예인들이나 NGO, 종교단체 등이 아프리카에 봉사를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아프리카의 전부가 아닌 일부다.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 글에서 내가 소개하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대륙 중 사하라사막 이남에 위치한 54개국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지난 7월 9일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도 포함된다.
이 지역 면적은 중국과 인도를 합한 것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9억에 못 미친다. 인구밀도가 아주 낮다. 그 이유는 이 지역 평균 경제발전 정도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낮고 그에 따라 보건시설도 열악하며 영양공급도 충분치 않아 영아사망률이 높고 HIV/AIDS가 광범하게 퍼져있어 성인 기대수명이 아주 낮은데 있다. 더욱이 이 지역 여러 국가들은 아직도 종족 간 분쟁이나 내전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이 여전히 우리가 아프리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좀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 광범한 지역을 포괄하며 여러 국가들이 속한 아프리카 내부의 다양성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남부에 속한 보츠와나(Botswana)는 이 대륙에서 가장 오랫동안 복수의 정당이 참여하는 선거를 정기적으로 행해왔을 정도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다. 특히, 보츠와나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면서 이로부터 얻어진 경제이득을 비교적 균등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해 2010년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이 $14,000 나 된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보츠와나는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한국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경험한 국가들 중 하나다.
반면,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 위치하며 아주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은 지난 1998년부터 2003년 까지 삼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프리카의 ‘세계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우간다와 르완다에 접경한 동부지역은 군인과 무장 시민군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전쟁의 주원인은 콩고민주공화국이 보유한 풍부한 천연자원에 대한 약탈 혹은 통제권 쟁취에 있다. 196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997년 까지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통치했던 모부투(Mobutu)는 아프리카의 길고 어두웠던 권위주의의 상징이며 부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모부투는 한 국가의 국정 수반이었지만 이를 이용해 개인적인 부를 축적해 1997년 그가 망명했을 때 당시 국가 채무에 상응하는 액수의 돈이 그의 스위스은행 계좌에서 발견됐다. 그는 집권기간 동안 벤츠를 타고 다녔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했고 사회간접시설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으며 국가 공무원들의 임금체불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1987년 우리나라를 거쳐간 민주화 물결은 1990년대 초 아프리카 대륙에도 밀려들었다. 1990년대 중반 까지 40개국에서 복수의 정당이 참여하는 선거가 이루어졌으며 이들 중 11개국에서 야당이 선거에 승리해 과거 권위주의 세력을 물리친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는 만델라 대통령으로 친숙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아프리카 대륙 옆에 위치한 커다란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도 여기에 속한다.
내가 사랑하는 레소토(Lesotho)도 1993년 선거를 통해 야당인 ‘민주주의를 위한 레소토 회의’(Lesotho Congress for Democracy)가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레소토는 인구 2백만 명의 조그마한 국가로 남아공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2004년 말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이곳에서 두 달을 보냈다. 머무는 동안 다수의 정치 지도자와 정당 활동가, 고위 공무원, NGO리더들을 만나 면접했다. 당시 내 연구주제는 레소토가 정당 간 합의를 통해 이룬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발전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보유한 것 이상이다. 운 좋게도 나는 레소토와 보츠와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관전할 수 있었다. 미리 표를 예매하진 않았지만, 친구의 고모가 경기장 출입을 담당하고 있어 그녀의 손에 현금을 조금 집어주고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있었던 국립축구경기장이 아직 완공이 덜 돼있었다. 그 사연이 아주 재미있었다. 냉전시기에 레소토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북한이 축구경기장을 지어주다 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철수한 바람에 아직도 완공을 못 했단다. 현재 레소토는 남한과 국교를 맺고 있다. 반갑게도 나는 이곳에 사는 한국교민들을 만나 기대도 못 했던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레소토에서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우선,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레소토의 수도인 마세르로 가는 비행기에서 반가운 동아시아인들을 만났다. 하지만, 나만 한국인이었고 모두들 중국인들이었다. 레소토는 산업이 그리 발달해 있지 않지만, 중국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섬유산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만난 레소토 친구들에 따르면 중국인 사업가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고용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국 본토에서 중국인 가족들이나 친척들까지 불러들여 현지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수도인 마세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중국건설회사가 가장 높은 빌딩을 짓고 있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레소토의 공용어가 아닌 중국어로만 쓰인 건설안내 표지나 안전 표시들이었다. 레소토 정부는 중국의 투자를 반겼지만, 정작 일상생활에서 중국인들과 마주하는 레소토 국민들은 갑자기 늘어나는 중국인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아 보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프리카는 다양한 국가들을 포함하고 이들 국가들은 모두 독특한 역사와 문화 사회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어왔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아직도 개발에 목말라 하고 있으며 우리의 발달된 기술력이 그들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만나면 상호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아프리카를, 아프리카는 우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선행돼야 한다. 아프리카에도 우리처럼 사람이 살고 있다.        

조원빈(정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