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수(경영)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TV 방송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이러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르겠다. 그저 한 사람의 평범한 시청자가 느껴왔던 TV 방송에 대한 단편적 생각이라고 편하게 읽어주길 바랄 뿐이다.
영국에서 10년 이상을 살면서 참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변화를 싫어하면서도 문화적 측면에선 유행을 창조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그런 흥미로운 나라다. 현재 영국에서 TV시청률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1960년 시작된 <코로네이션 스트리트(Coronation Street)>, 1972년 시작된 <에머데일(Emmerdale)>, 1985년 시작된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로서 모두 드라마이다.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 빈민층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연속극(Soap Opera)들이 무려 25~50년 동안 영국인들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나라가 다큐멘터리, 뉴스, 유아대상 프로그램, 게임/퀴즈쇼, 리얼리티/서바이벌 프로그램, 탤런트 콘테스트 프로그램 등에서는 주요 문화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BBC 다큐멘터리와 BBC 월드 서비스는 그 명성이 자자하고, <텔레토비>는 전세계 많은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2009년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8관왕의 영예를 안은 슬럼독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에는 <누가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는가?(Who wants to be millionaire?)>라는 영국의 퀴즈쇼가 인도판으로 바뀌어 나온다. 영국의 <팝아이돌(Pop Idol)>이 전세계 80여개국에 수출되고,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로 인생역전을 이룬 수잔 보일과 폴 포츠는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영국에서 보았던 게임/퀴즈쇼, 리얼리티 및 콘테스트 프로그램을 많이 보게 된다. 출연진과 진행자가 한국인으로 바뀌었을 뿐 무대 디자인이나 장치, 심지어 심사원 수까지 너무나 낯익은 모습이다. 영국에서 보던 걸 한국에서도 보게 되니 한편으로 반가왔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로열티가 지불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똑같은 형식을 쓰는 만큼 분명 원저작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테니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방송포맷(format)을 사고 파는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1989년 영국에서 프로그램 표절시비가 법적 공방으로 치달으면서 방송포맷을 하나의 지적재산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이해가 높아지면서 본격화되었다.
즉 예전에는 드라마와 같은 완제품을 수입할 때만 로열티가 지불되었으나 방송포맷에 대한 저작권이 강화되면서 포맷 사용에 대해서도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한다. 예전에 횡행했던 베끼기가 저작권 강화 및 유튜브 등을 통한 인터넷 유통 영상물 활성화 등으로 이제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현재 전세계 방송포맷 시장 규모는 약 4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앞으로도 그 성장세는 가속화될 것 같다. 세계 최대의 방송포맷 수출국은 영국으로서 전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방송포맷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미국과 네덜란드가 따르고 있다. 방송포맷 제작 업체로는 <Deal or No deal>, <Big Brother> 등을 개발한 네덜란드의 엔데몰(Endemol)과 <Pop Idol>, <The Apprentice> 등을 개발한 영국의 프리맨틀미디어(Fremantle Media) 그리고 <Dancing with the Stars>, <Weakest Link> 등을 개발한 영국의 BBC 월드와이드(Worldwide)이다. 이처럼 현재 전세계 포맷시장은 영국, 미국, 네덜란드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워낙 많은 나라에서 똑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이 방영되다 보니 어느 나라가 원조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방송포맷만 수입하여 방영된 프로그램이 20편이 넘는다고 한다. <댄싱 위드 더 스타>, <코리아 갓 탤런트>, <탑기어 코리아>, <엄마를 바꿔라> 등이 영국으로부터, <1대 100>, <신동엽의 예스 오어 노> 등이 네덜란드로부터,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등이 미국으로부터, <순위 정하는 여자>, <결정 맛 대 맛> 등이 일본으로부터, <러브스위치> 등이 프랑스로부터 수입된 방송포맷들이다. 방송포맷의 수입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늬만 국산이다’, ‘한국이 로열티를 올리는 주범이다’, ‘창의력을 저해한다’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방송포맷에 대한 로열티는 1회당 약 200~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1,000만원 정도를 지불하면서까지 특정 방송포맷을 수입한 건 지나치지 않느냐는 목소리다.
물론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로열티 상승, 창의력 저해 등과 같은 비판에는 방송업자들이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방송포맷 수입 자체를 너무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방송포맷을 수입한다. 방송포맷 순수출국은 영국과 미국뿐이며 세계 최대 개발업체를 보유한 네덜란드도 수입이 수출보다 많다. 방송사들은 시청률과 수익 제고를 위해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된 방송포맷을 수입해 비용 대비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할 것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얻고자 노력하는 방송사를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면 말이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방송사의 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노력을 더불어 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롭고 특별한 방송포맷 개발을 위해 업계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흥행에 성공한 방송포맷들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방송포맷의 무조건적인 수입보단 우리 정서에 맞게 지역화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지역화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야말로 방송포맷 사업에서 염두에 둬야 할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많은 외국인들의 ‘한류’, ‘K-POP’ 열풍을 접하면서 한국의 문화경쟁력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중국, 베트남으로 수출된 <도전! 골든벨>, 터키, 미국으로 수출된 <우리 결혼했어요>는 우리 역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방송사업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의 창의적 사고가 한국의 문화경쟁력을 살찌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