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

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상아조각 속에 천사가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나의 의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조각상을 탄생시켰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21세기 음악의 신도 말했다. “나는 이어폰을 꽂은 당신의 머릿속에 영상이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나의 의무임을 깨달았다”
다분히 장난스럽지만, 이것이야말로 뮤직비디오의 탄생 이유를 가장 명쾌히 설명할 수 있는 비유가 아닐까? 음악과 영상. 제각기 충분히 발전을 거듭하던 두 장르가 서로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단순한 음반의 홍보 수단에서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인정받기까지 뮤직비디오의 전후 행보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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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음악에 어울리는 영상을 더해 5분 내외로 편집한 영상물을 가리킨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CF가 제품 홍보라는 공동의 목적을 지니듯 뮤직비디오도 특정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다. ‘어떻게 하면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을까’가 바로 그것이다. 노래가 흥행하길 바라는 가수와 제작자의 염원을 담아 우리 앞에 영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영상을 수반한 음악의 등장
대중음악계에 뮤직비디오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81년부터였다. 미국의 음악 전문 방송 MTV가 개국되면서 노래를 담은 영상은 전파를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갔다. 뮤직비디오는 새로 발표한 노래나 음반을 홍보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기를 끄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는 90년대 초반부터 뮤직비디오의 개념이 도입돼 자체 제작도 비슷한 시기부터 이뤄졌다. 초반에는 가수들의 인식 부족, 저작권을 둘러싼 문제 등으로 제작과 유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에 발표한 첫 앨범〈난 알아요>의 뮤직비디오가 음반의 인기와 함께 대량 판매를 기록하며 변혁이 일었다. 곧이어 이들의 1996년 작〈컴백홈〉은 MTV가 제정한 아시아 뮤직비디오 상을 받으면서 국내 뮤직비디오 시장이 차츰 자리를 잡아나갔다. 이후 신세대의 이목을 사로잡는 자유로운 표현방식과 영상미로 무장한 뮤직비디오는 음악 전문 케이블 TV의 주요 콘텐츠로서 대중에게 다가섰다. 최근에는 독창적인 영상 세계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영화, 회화적 요소를 도입한 뮤직비디오 작품도 제작되고 있다.

10일 만에 만나는 영상예술
뮤직비디오는 △기획 △촬영 △편집의 제작과정이 타 영상물에 비해 짧은 편이다. 뮤직비디오 제작팀 혹은 감독에게 의뢰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작업에 착수한다. 서태지의 <모아이>, 소녀시대의 <The boys>등의 제작을 맡았던 스튜디오 ‘쟈니브로스’의 이지석 편집팀원은 “기획은 보통 3~4일 정도 걸리지만 참신한 생각이 떠오르면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촬영은 하루에서 길게는 4일 정도 소요되며 촬영을 마친 영상을 편집하는 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평균 10일 안팎의 제작기간을 거쳐 만들어지지만 뮤직비디오 한편의 길이가 4~5분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일반적인 제작비에 대해서 이 팀원은 “제작비는 요구하는 영상의 질과 촬영 장소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조건에 따라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 원이 드는 작품도 있어 평균치를 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단순한 가무(歌舞)에서 드라마까지
유행에 민감한 뮤직비디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식면에서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도입 초기인 90년대 초반에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처럼 가수가 직접 영상에 등장해 배경과 의상만 계속 바뀌며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부르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유행했다. 출시와 동시에 화제가 됐던 조성모의 <To Heaven>처럼 연기자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가사와 연관된 고유의 이야기전개를 갖춘 한 편의 드라마가 음악과 함께 펼쳐졌다.

2ne1의 <Ugly>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대중음악의 주를 이루고 있는 최근에는 두 가지 형식이 혼합돼 나타나고 있다. 발전된 컴퓨터 그래픽, 촬영 기술을 바탕으로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과 안무에만 집중하기도 하고, 드라마 형식의 전개 곳곳에 노래하는 모습을 적절하게 삽입하기도 한다. 또한 과거와 달리 대자본을 등에 업고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빅뱅의 <Love song> 뮤직비디오는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 *‘원 신 원 컷(One scene one cut)’ 촬영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해 제작비에만 2억여 원이 투자되기도 했다.

영상예술로서의 미래를 꿈꾸다
위성방송의 확대, 각종 미디어의 기술적 발전으로 형성된 매체의 다변화 등에 힘입어 뮤직비디오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해왔다. 전문 뮤직비디오 제작자 또한 CF나 영화감독 등과는 다른 고유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영상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성공했다. 뮤직비디오는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인디음악과도 결합하고 있다. 뮤직비디오가 과거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의 전유물에서 탈피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4분여의 짧은 시간 속에 담아내는 영상예술인 뮤직비디오. 3D, 4D기술 도입과 같은 실험적인 시도가 많아지는 요즘, 뮤직비디오 속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