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철학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2년 2개월을 지냈다. 그의 나이 28세 때의 일이며 그의 저서 『월든』은 당시의 경험을 10년 후에 회상하며 출판한 저서이다. 그리고 45세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나는 오래전 그 책에서 ‘자발적 빈곤’이란 멋진 글을 가슴에 새겨 두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부귀영화를 멀리한 채 고작 두 권의 책만 남기고 작고한 그를 두고 왜 지식인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해박한 지식, 모방하기 쉽지 않은 삶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아마도 그가 숲에서 살며 보여준 진솔하고도 간결하며 실천적 지성의 표상으로 살았던 삶에 대한 부러움이 가장 컸으리라 생각된다. 철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필자도 중년의 나이에 경기도 송전 호숫가 사방 나무 숲으로 가득한 농장에 오두막을 얻었다. 오래 전 마음에 새긴 ‘자발적 빈곤’을 실천해 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글에 표현된 것같이 철저하게 절제된 삶을 행하기란 글이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소비하는 것 이외에 현대인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찾기 어려운 현 시대 풍요는 우리 삶의 가장 큰 유혹이자 희망이기에 그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시골생활이 벌써 2년째 접어들고 있다.
 지난 겨울의 한파는 유독 매서웠다. 100년만의 추위는 마을의 유일한 생명수인 우물을 얼게 만들어 초보 농사꾼은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지난 해 텃밭은 동네 노인들의 조롱거리였고 작심하고 밭농사를 시작한 올해도 여름 내내 폭우가 내려 농작물은 병충해와 수해에 시달렸다. 마음은 깊은 수렁에 빠진 듯 무거웠으며 내 존재의식엔 번민만 가득차고 넘쳤다.
게다가 그나마 살아남은 농작물을 잘 키워보겠다고 얻어 뿌린 농약은 동네 어르신의 실수로 제초제를 넣어주시는 바람에 가을도 되기 전에 대부분의 작물들이 노랗게 타 죽어가고 말았다. 어찌하면 좋을까?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덥고, 춥고, 모기와 말벌과 나방이 천지에 가득한 이곳에 나는 어이하여 내려와 사서 고생하는가? 여름 내내 이런 잡념들 또한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프로 농부들에겐 일상인 이런 나날들은 나에게 쉽지 않은 도전거리들이었다. 이런 내가 철학한답시고 서재 가득 책 먼지 쌓아두고 형이상학을 논한다. 지식인의 초상이다. 이런 비겁한 군상들이 자연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과 함께 살아야 함을 잊은 채 홀로 제일인양 인간의 존엄성과 이성의 위대한 산물로 포장하며 죄악의 산물들을 토해내고 있다. 45억 년간 생명을 이어온 지구가 불과 200여 년 만에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는 매일 5천명이 오염된 식수로 죽어가며 10억 명의 인구가 안전한 식수원을 찾지 못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동물사료나 생물연료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50%의 곡물만이 거래되고 경작지의 40%는 장기적인 손상을 입었다. 매년 1,300만 헥타르의 숲이 사라지고 포유류의 25%, 조류의 12.5%, 양서류의 33%가 멸종위기에 처한 채 자연사보다 1,000배 더 빨리 죽어가고 있다. 75%의 수산물이 소진되어 고갈되거나 위험에 처해있고 지난 15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은 관측 이래 최고치에 이르렀으며 빙원은 40년 전보다 40%나 얇아졌다한다. 이로 인해  2050년이 되기 전에 2억 5천만 명의 기후 난민이 생겨날 것이라 한다.
이런 통계는 이미 너무 많이 들어 귀찮고 관심 밖의 일로 치부되곤 한다. 오직 목전의 일로 우리는 바쁘고 또한 그 문제만이 절박할 뿐이다.
 전쟁, 테러, 리먼사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유럽 금융위기 등 욕망의 지옥으로 변해가는 지구촌에서 국가들은 오직 생존게임 속으로 국민들을 내몰고 있을 뿐이며 대학에서 지성을 논하는 것조차 배부른 짓이 되었다. 살아가기에도 벅찬 학생들에게 메아리 없는 교양을 가르치며 멋진 삶을 호도하는 내 양식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숨이 막혀오고 절박할수록 혹시 우리는 ‘자발적 빈곤’이라는 말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최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하고, 미래의 지구촌 리더이자 지성인으로 살아 갈 그대들조차 벌어지고 곧 닥쳐올 재앙을 외면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너무 비참하지 않겠는가! 아주 작은 것의 실천과 생각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필요하다.
  자가용대신 버스를 타고 서울 가는 길이 어느새 즐겁다.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오고간다. 긴 장마와 추위 속에서도 모질게 살아남은 채소를 키우고 나누어 먹을 때 뱃살이 빠지고 가슴이 따스해진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지는 변화를 느낀다. 무엇보다도 새소리, 벌레소리, 새벽 닭 우는 소리들과 맑은 공기가 내 영혼을 맑게 해준다. 다 버리고 나면 또 다른 충만함이 찾아와 생명의 소리로 내 마음과 정신을 일깨운다.
 지난 여름 철학자의 텃밭에서 자라던 참외는 거센 비에 녹아 모두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참회(懺悔)의 새 싹이 가을 태양을 맞이하고 있다.
함순용(유동)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