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학 한문교육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도대체 한마디 말로 어떻게 천 냥이나 되는 많은 돈을 갚을 수 있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眞情)이 담긴 한마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으며, 진심(眞心)에서 우러나오는 말 한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천 냥 아니라 만 냥이라도 갚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사회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유지해 온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선후배가 모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어느 선배를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한 후배가 한 달 반가량 아무도 모르게 원어로 연습하고 또 연습한 이탈리아 가곡과 아리아를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어눌한 발음으로 불러제킨 것이다.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 유려한 목소리도 아니고, 정확한 음계도 아니었지만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목소리가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순수한 열정과 진정을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성악가처럼 잘 부르지도 못하고 어눌한 발음이었어도 듣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진정성이다. 이런 진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해마다 교양과목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꼭 해보라는 주문이 있다. 어느 날이든 붕어빵 두어 개 사가지고 부모님께 ‘오늘 얼마나 힘드셨는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려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평소 하지도 않던 행동이고, 부모 자식 간에 새삼스레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고 굉장히 어색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용기를 내어 해본다면 부모님께서 흐뭇해하실 것은 물론이고 그 말을 한 자신도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질적인 것보다 이런 자그마한 진정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이다. 세상에는 금전적인 가치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
『논어』에 ‘巧言令色 鮮矣仁’이라는 구절이 있다. ‘듣기 좋게 꾸미는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낯빛에는 인덕(仁德)이 드물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저 사람의 말이 진정인지 아닌지 얼굴이나 말하는 품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중국어에 ‘너의 입술이 달다’라는 말이 있다. 호감이나 사려는, 진정성이 전혀 없는 달콤하기만 한 말이 어느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가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별주부의 말에 무슨 진정이 있으며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전국시대에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을 주장하고 다녔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라는 이가 있었는데 아마 천하에 이들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각 나라의 약점과 강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현란한 말솜씨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였으나, 결국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고 자신들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진정이 없는 현란한 말솜씨는 눈앞의 이익을 잠시 취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어눌한 말투와 세련되지 못한 행동일지라도 진정이 있다면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