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사람들은 흔히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5월에 몰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5월의 첫날은 달력에 근로자의 날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기념하는 이 날은 흔히 노동절이라고 하며 메이데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한 날이다. 

노동절이 생겨난 계기는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1일 8시간 노동 보장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시위를 시작한 헤이마켓 사건이었다. 시작은 시카고에서 했지만,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어 최대 50만 명의 노동자가 시위에 참여했는데, 시카고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폭력진압에 대한 항의로 폭탄 투척까지 발생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시위를 주도한 노동자들을 체포해 폭동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는데, 이 사건이 세계에 큰 영향을 줘서 노동절로서 기념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를 중시하는 공산국가에서는 성대히 기념하는 날이었고, 공산국가가 아닌 나라에서도 노동절을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래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다가 1958년부터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날짜를 변경했고, 제3공화국 시기인 1963년에는 아예 이름도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렸다. 많은 시간이 흐른 1994년이 되어서야 날짜를 5월 1일로 환원시켰으나 이름은 그대로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노동운동을 염려한 박정희 정권이 이름에 노동 대신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의 근로라는 단어를 삽입한 것이므로 다시 노동절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노동절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만 기념하는 날도 있다. 바로 요즘 한참 인구에 회자되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시작되어 열흘 뒤인 27일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서야 총성이 멎은 비극적 사건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장장 18년에 달하는 긴 시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급사하면서 국내 상황이 급변한다. 모든 권력을 통제하던 단 한 사람이 죽자 통제가 풀려버린 것이다. 특히 박정희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군부에 육성한 사조직 하나회가 기회를 노리다 12월 12일 휴전선 병력을 차출해 서울을 장악한다. 훗날 신군부라 불리게 될 하나회를 주도한 전두환과 그 세력들은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를 비롯한 계급과 육사 기수 모든 면에서 윗사람들인 군 상부에 대하여 하극상을 저지른 셈이었다.

박정희 사후 찾아온 민주화의 바람인 일명 ‘서울의 봄’ 또한 하나회 세력의 부상과 함께 끝나버렸다. 서울에만 내렸던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4월에 이를 때까지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 노동자들의 투쟁과 더불어 국회에서 비상계엄을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신군부가 벌인 짓이었다.

그런데 광주에서 진압군들이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제압하는 수준을 넘어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다가 결국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 문제였다. 살육에 분노한 사람들이 저항하면서 사태가 심화된 것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이미 국가에서 평가를 내렸고, 사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으며 5.18의 기록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노동절의 계기가 된 헤이마켓 사건이 후대의 노동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지금 보장되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모두 그들이 투쟁한 결과이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그 참혹함이 후대의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처절히 저항했던 사람들의 피눈물도 함께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오현웅(일반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