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미 기자 (qewret16@naver.com)

산재보험 개선 중이나 여전히 처리 시간과 사각지대 문제
‘아프면 쉴 권리’ 보장하는 상병수당 제도로 나아가야 할 때

 

카페 아르바이트 중 괴롭힘을 당해 우울증을 앓게 된다면 산재처리가 될까? 배달을 하러 가던 중 사고가 난다면?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보험이 적용될까? 언제 어디서나 산재는 일어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산재처리를 받을 수는 없다. 노동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지만 산재처리를 받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노동자도 증가하고 있다.



업무로 인해 아프다면, 충분히 보상해드립니다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하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을 통해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은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노동자의 △부상 △장해 △질병 △사망에 대해 보상하는 사회보험의 일종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며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게 원칙이다.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출퇴근재해의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병 역시 산재처리가 가능하며 적용 범위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변화하는 노동의 형태에 따라 산재보험의 상세 규정은 개정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업무상 재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증명과 처리, 이게 최선일까요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업무와 재해의 관련성이 증명돼야 한다. 작년 논란이 됐던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만성 과로 인정을 받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공단의 만성과로인정기준 시간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7개의 가중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될 경우 업무 시간과 무관하게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보지만 인정 사례는 극히 드물다.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권동희 노무사는 “시간은 단순히 하나의 조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양적 기준을 설정한 것은 편리성 때문인데 절대적인 지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정신질병 산재 신청을 위해서는 대형병원 또는 공단 산하 병원에서 시행한 임상심리검사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병원 예약이 어려워 산재 신청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신청 후에도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된다. 원칙적으로 모든 질병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의 판정을 통해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규정상 질판위는 공단의 심의의뢰부터 20일 이내에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정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 10일 연장 가능하다. 그러나 작년 질판위의 평균 처리기간은 40.6일이었다. 공단에 업무상 질병을 신청하고 통보를 받기까지 작년 8월 기준 평균 183.6일이 걸렸다. 산재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신속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질판위는 △서울 △경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설치돼 있으며 지역별로 정신질병에 대한 승인율 편차가 크다. 작년 승인율은 평균 70.8%인 데 비해 부산은 52.7%에 머물렀다. 가장 승인율이 높았던 경인은 78.8%에 달했다. 권 노무사는 “지역별 편차를 줄이기 위해 인정 사례를 공유하는 등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증명 과정 줄이기 위한 추정의 원칙, 확대 우려의 목소리도
어린이집에서 5년 이상 근무한 보육교사가 무릎 연골에 이상이 있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반월상 연골파열을 산재로 신청하면 별도의 증명 과정 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근골격계 질환 추정의 원칙(이하 추정의 원칙)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는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특정 질병이 발병한 경우 공단의 전문적인 재해조사 및 질판위의 판정 절차 없이 승인하는 제도다.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어 조기 치료와 복귀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추정의 원칙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작업환경 개선 차이 및 직종 내 세부 작업의 신체 부담 차이를 반영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가령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근골격계 유해 요인을 조사하고 설비를 자동화한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이는 시설 관리 소홀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추정의 원칙은 세부직무별 △근골격계 부담작업 △노출시간 △업무강도 △유해요인이 달라 일괄 적용이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노동자가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거나 순환 근무할 경우 직종과 근무 기간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또한 연령대에 따른 자연발병 가능성도 고려되지 않는다. 경총은 “근무 기간을 채운 노동자가 퇴행성 질환에 대한 산재처리를 요구해 산재 승인이 급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권 노무사는 “오히려 추정의 원칙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개별 사례에 대한 심의가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상 근무 기간을 충족하지 못한 업무상 질병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은 노동의 다양성과 변화를 따라오고 있나
현재 산재보험은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을 포괄하지 못한다. 배달 기사를 비롯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나 무조건 산재 보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업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해야 한다는 전속성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재보험과 관련한 논의는 예술계에서도 활발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산재처리를 위한 정보 부족과 행정적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예술인 산재보험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 단위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예술인도 중소기업사업주 방식으로 산재보험에 임의가입해 직업 예술활동 중 발생한 재해를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활동 증명 절차가 까다롭고 경력이 짧으면 ‘예술인’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 현장 외의 업무로 인한 만성 과로 등의 질병을 산재 신청하려 해도 시간을 측정한 객관적 자료가 없어 증명이 어렵다. 권 노무사는 “노동의 형태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산재보험은 여전히 종속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산재 인정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병수당 제도 통해 아파도 괜찮은 사회로
어떤 노동자는 업무상 재해 이후에도 산재처리를 기다리며 생계유지를 위해 일해야 한다. 최근에는 업무상 재해에 대한 지원을 넘어 아플 때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자 상병수당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업무 외 질병·부상 등으로 경제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일부 보장해 주는 제도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지원금도 상병수당의 일종이다. 상병수당 제도는 올해 7월부터 시군구 6개 지역에서 시범 도입된다. 조은노무법인(대표 김종헌) 박한울 노무사는 “시범도입을 통해 뚜렷한 기준 마련을 위한 사전 조사의 기능이 잘 이뤄지길 바란다”며 “산재 외 질병·질환에 대해 아파도 괜찮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의미한 걸음이 될 것”이라 기대를 표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사업주와 계약을 맺고 근무하지만 정해진 월급이 아닌 일한 만큼 소득을 얻는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라이더 유니온 제공.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라이더 유니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