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naraekim3460@naver.com)

친서방 서부, 친러시아 동부
현 전쟁으로 이어진 돈바스 내전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키이우 루스(키예프 공국)에서 갈라져 나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오랜 시간을 거쳐 서로 다른 국가로 발전했다. 그러나 불과 30여 년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구소련)의 한 국가였고, 현재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인구 비율은 17%다. 러시아는 꾸준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국민에게 영향력을 키우려는 시도를 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양국 간의 역사를 알아보자.

우크라이나, 어떤 나라인가

우크라이나는 15개의 구소련 국가 중에서도 역사나 자연환경, 지정학적 측면 등의 이유로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먼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9세기의 키이우 루스를 국가의 기원으로 삼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역사에 속해 있는 일부”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출신 빅토리아(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4기) 원우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분명히 다른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국가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흑토 ‘체르노젬’이 국토의 절반을 덮고 있어 세계 3대 곡창지대로 꼽힌다. 전 세계 수출량의 20%에 이르는 밀을 수확하며 철광석이나 석탄 등의 원자재 매장량도 풍부하다. 결정적으로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낀 채로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다.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정치학과 연성흠 박사는 “우크라이나는 일종의 완충지대이며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이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는 오랜 시간 주변국에 의해 분할되고 예속된 아픈 역사가 있다. 1480년부터 400여 년간 우크라이나의 동부는 러시아에, 서부는 폴란드 등에 지배당했다. 연 박사는 “동부에는 스스로 러시아의 일부라는 인식이 퍼졌으나 서부는 자치의 기회가 많아 민족의 정체성을 잘 보존했다”고 설명했다. 동·서부는 1922년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출범하며 한 나라로 통합됐으나 여전히 문화나 종교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차이를 보인다. 이후 소련 통치 아래 우크라이나 동부에 중화학공업이 발달했다. 이때 러시아 노동자가 많이 유입되며 동·서부 간 민족적 차이가 심화됐다.

홀로도모르와 크름자치공화국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로는 크게 홀로도모르와 크름반도 합병을 들 수 있다. 1932년 스탈린이 농장집단화 정책을 추진하며 우크라이나 내 모든 곡물을 몰수했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2년간 우크라이나에서 아사한 사람이 700만~1000만 명에 달했다. 이때의 대기근을 기아에 의한 죽음이라는 뜻인 ‘홀로도모르’라고 부른다. 우크라이나는 꾸준히 당시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이다. 2013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연기하고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내 *유로마이단 시위로 이어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는 이 사건을 빌미로 2014년 3월 *크름자치공화국에 러시아군을 파견했다. 현지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자치 지역이지만 러시아계 인구 비율이 높은 크름자치공화국은 며칠 만에 러시아와의 합병 및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당시 유엔 총회에서는 모든 국가와 국제기구가 크름반도의 지위 변경을 승인하지 않도록 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실효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빅토리아 원우는 “이전에는 그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다른 국가라는 인식만 있었다”며 “유로마이단 시위와 크름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에 반감을 갖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늘어났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현 전쟁의 명분이 된 돈바스 내전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주를 통틀어 이르며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러시아계 인구 비율이 높은 곳이다. 크름반도 합병 당시 돈바스의 친러시아 주민들은 스스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하 DPR)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이하 LPR)의 독립을 선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사이에 돈바스 내전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돈바스에서는 소규모 교전이 8년간 이어져 왔다. 빅토리아 원우는 “돈바스 내전으로 전쟁 소식에 비교적 익숙했으나 올해는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돼 충격이 컸다”고 전했다.

서방은 러시아가 돈바스의 친러 반군을 군사 및 경제적으로 지원한다고 주장한다. 크름반도 합병 시 현지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든 것처럼, 푸틴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직전에도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파병을 지시했다. 빅토리아 원우는 “키이우에서 대학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동·서부 출신이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유로마이단=유럽을 뜻하는 유로(Euro)와 우크라이나어로 광장을 뜻하는 마이단(Maidan)의 합성어.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일컬음.
◇크름자치공화국=과거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자치공화국. 자치공화국은 국가 내 국가의 형태로 일반적인 주에 비해서 큰 자치권을 가지나 국제법상으로 국가의 지위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