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미 기자 (qewret16@naver.com)


정책에 소외되는 돌봄 관계 있어
가족의 기능 대한 재논의 필요해

 

바야흐로 가정의 달, 5월이다. 가족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자 김차령(13) 양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이라 답했고, 박정빈(10) 군은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사는 것”이라 말했다. 당신은 ‘가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변화하는 가족 형태, 가족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가족’이라고 하면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기존의 4인 중심 가족 형태는 1995년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인 가구는 31.7%로 가족 구성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2인가구(28.0%)△3인가구(20.1%) △4인 가구(15.6%)가 그 뒤를 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가족부가 2021년 실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7.8% 가 가족 형태의 변화를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이다’고 답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기존의 가족 형태가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경숙 교수는 “근대의 가족은 잘 살고, 자식을 출세시키는 것과 같은 발전주의적 욕망을 가족의 목표로 설정하는 동시에 젠더 불평등을 기반으로 형성됐다”며 “이러한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을 꾸릴 수 없게 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이들이 가족의 기능을 누리고자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려 해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해 다른 형태의 가족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전보영 소장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정상적인 형태로 보며, 이러한 형태가 가족의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산업화 시대에 일과 가정이 분리되며 등장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선 이상적인 가족 형태를 제시하는 정책과 다양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강화됐다.

가족의 형태를 제한적으로 보는 시각은 일상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편부, 편모는 ‘치우치다’, ‘쏠리다’라는 뜻을 지닌 편(偏)자를 사용해 양쪽 부모가 다 있어야 함을 전제한다. 다른 예로 가족센터에서 지원하는 ‘부모교육’이 있다. 이러한 명칭은 조손가족 등 부모가 아닌 양육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미혼모’도 같은 맥락에서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시각이 전제된 표현이다.

앞선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정상가족’의 범위를 좁게 설정해 가족의 기능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족’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어냈다. 전 소장은 “정서적인 유대감이 얼마나 잘 형성되는지와 같은 기능에 대해 논의할 때”라며 “‘정상적’인 가족은 없다”고 문제를 짚었다. 가족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1인 가구 뒤에 가려진 2인 동거 있습니다
함께 살며 가족의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법과 정책이 포괄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이로 인해 혼인 관계가 아닌 두 사람은 서로를 돌보고 싶어도 책임질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만약 동거인이 응급실에 실려 간다면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동거인이 퇴원 후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도 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없다. 심지어 동거인이 사망에 이르렀을 때 직접 수습이 불가능하다.

동거인에게 폭력을 당하더라도 기존의 가정폭력 제도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동거인 간의 폭력은 개인 간의 폭력으로 처리돼 가정폭력과 달리 무죄 추정의 원칙이 예외 없이 적용된다. 따라서 피해자가 폭력을 입증하기까지 더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가해자의 접근 제한과 같은 법적 조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피해자 쉼터를 이용할 수 없어 가해자와 공간을 분리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동거를 그만두고자 할 때 재산권 등에 관한 논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이혼과 달리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결혼, 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혼인 제도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각자의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선 우정에 기반한 동거관계가 있다. 청년층과 같이 중노년층 또한 고독과 돌봄을 이유로 친구와 함께 살기도 한다. 동성 커플과 같이 결혼을 희망하나 현재 혼인 제도에 포함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인 이성 커플의 동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0년 비혼 동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정서적 유대감과 안정감(88.4%) △상대방의 생활습관을 파악해 결혼 결정에 도움(84.9%) △경제적 부담 완화(82.8%) 등을 이유로 동거를 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 소장은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을 때의 기회비용이 더 크다고 여긴다”며 청년 동거의 이유를 분석했다. “결혼 시 수행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동시에 정서적 안정감을 누리고 싶은 이들이 증가한 것도 원인”이라 덧붙였다. 한편 중노년층의 경우에는 혼인신고를 했을 시 발생할 상속 등의 문제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택하기도 한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생활동반자법
가족의 기능을 서로 제공 중인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이하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 혼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성인 2명이 함께 살아가자고 합의한 후 그 관계를 국가에 등록하면 현재 가족이 갖는 제도상의 권리 중 일부를 부여하는 법이다. 혼인 제도와 별개의 개념으로 동성혼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생활동반자법의 명칭과 내용을 처음으로 제안한 황두영 작가는 “성인 2인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한 법이다”며 “2인 이상을 포괄할 경우 상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우선 2인으로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생활동반자법은 △돌볼 권리 △의료결정권 △주거권 등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을 법적 권리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 개정 최소화를 위해 친권과 상속권 등의 권리는 포함하지 않으며, 혼인제도에 비해 신청 및 해소가 단순하다. 황 작가는 “법안을 구성할 때 고독과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며 “고독사 문제 등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했다.

법안에 대한 지적 역시 존재한다.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유계숙 교수는 “민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라고 전했다. 또한 생활동반자법이 모티프로 삼은 팍스 제도를 도입하고 출산율이 반등했던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 짚었다. 유 교수는 “프랑스는 팍스 제도 이전부터 동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동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하다”며 “인식보다 법이 앞서나가는 것”이라 전했다.

‘정상가족’ 아닌 건강한 가족으로 나아가야
새로운 가족 형태의 등장을 기존 가족의 위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가족 형성의 기반에 대한 물음은 던져졌고, 변화를 수용하지 못할 때 사회 모순은 커지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덧붙여 “근본적으로 가족이 어떤 기능을 제공해야 할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며 쟁점을 짚었다.

전 소장 역시 “위기가 아닌 전환기”라며 “구조적으로 가족의 형태를 정의하는 데서 나아가 건강가족 개념에 대한 논의와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한 가족은 ‘정상가족’과 다른 개념이다. 가족의 구조나 형태가 아닌 가족의 기능에 초점을 두고, 가족원들의 행복과 같은 개념에 주목해 건강성을 논한다. 전 소장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 가족의 건강성에 초점을 둔 사회로 나아가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