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체재’에게는 각자 그것이 발명된 이유가 있고, 그것들이 구시대의 것들을 밀어내고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게 오래 되고 불편한 것을 왜 사랑하는 이들 중 아무도, 왜 그것들을 사랑하는가에 대해 구태여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사랑하게 된 ‘오래되고 불편한 것’은 만년필이었다. 열일곱 살 때 처음 접했던 만년필은, 60년대 현대 소설에서나 읽고 상상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백화점의 한 문고에서 접했던 ‘최초의’ 만년필은, 빨간색 플라스틱 바디를 한, 매력적인 삼각기둥이 반 바퀴쯤 꼬인 모습이었는데, 나는 그 ‘현대미술’스러운 외형에 이끌려 그 만년필을 곧장 사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한 소유가, 곧장 그것의 애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서야 처음 배웠다. 볼펜처럼 힘을 주어 막 써서도 안 됐고, 아무 종이에나 쓸 수도 없었다. 잉크를 주기적으로 채워줘야 했고, 가끔은 세척도 해 주어야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아무리 싼 만년필이었지만, 볼펜보다는 확실히 비쌌다. 이런 만년필을 왜 쓰는지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런 만년필에 대한 사랑은, 잉크가 물에 퍼지듯 서서히 내 손을 길들였다. 볼펜처럼 막 쓰면 안 되었기에 올바른 자세를 연습하며, 손목에 힘을 빼고 예쁘게 글씨를 쓰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즈음에서는 필사에도 재미도 붙였다. 만년필에 맞는 좋은 종이를 고르는 눈썰미가 생겼고,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이름을 한 파란색 잉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년필 세척은 오랫동안 쓰지 않은 펜과 하는, ‘나는 아직 너를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일종의 대화였다. 비싸다는 것, 그 하나만큼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던 고등학생의 발목을 붙잡기는 했다. 그러나 애정을 붙이고, 잉크를 잘 갈아주고, 때때로 잘 세척해주기만 한다면, 볼펜 몇십자루만큼, 아니 어쩌면 몇 백자루만큼이나 오래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단 내가 사랑하는 '오래되고 불편한 것’은 만년필뿐이 아니다. 그러나 만년필을 시작으로, 나는 오래되고 불편한 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은 이유를 나는 이제야 알듯하다. 오래되고 불편한 것에는 그만한 애정이 필요하다. 더 많은 손길로 쓰다듬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알고 관리해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손이 참 많이 간다. 그러나 그만큼 더 오래 쓸 수 있고, 더 오래 좋아할 수 있다. 오랫동안 쌓인 손때와 관심은 곧 사랑이 되어, 마치 살아있는 이처럼 생각하게 된다. 혹자는 이런 것을 두고 ‘인간미’가 있다고들 하는 것 같은데, 정말로 나는 그렇게 '사람 같은’ 물건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직 어색하고 서툴다는 생각이 들 때, 일단은 사람 같은 물건을 사랑해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많은 사랑을 바라고 또 받고 있는지 새삼 깨달을 것이다. 분명 사람은 만년필만큼, 그리고 어쩌면 더 많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일 테니까.
 

박건후(국문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