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현 편집장 (kshyunssj@skkuw.com)

지난 15일, 샌드위치의 소스를 만들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뒤 보고 후 신고가 이뤄지기까지는 10분이 걸렸다. 야간조 동료들은 배합기에서 소스를 퍼내고 피해자를 직접 수습해야 했다. 주간조 동료들은 몇 시간 뒤 흰 천으로 덮어둔 사고 현장 옆에서 일을 해야 했다. 피해자의 빈소에는 그가 근무하던 회사의 봉지빵 두 박스가 답례품이랍시고 덩그러니 놓였다.

회사가 직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 곳에서도 사람에 대한 존중은 찾을 수 없다. 어쨌든 공장은 돌아가야 하니까, 어쨌든 빵은 만들어져야 하니까.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일어나는 일들은 때로는 귀를 의심하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사람’보다, ‘노동자’와 ‘인력’이라는 표현을 더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과 ‘노동자’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기업의 자원인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사람으로 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사고 현장 바로 옆에서 동료에게 일을 하게 하고, 장례식장에 빵을 두고 가는 것은 일의 효율과는 큰 관련이 없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려는 조금의 고민이라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어쩔 수 없었던 일 뒤에도 어쩔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회사가 사람을 향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안다. 모든 기업의 존재 이유는 분명 이윤 추구에 있다. 그러나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이 있다. 윤리적 목적뿐만 아니라 결국엔 소비자를 설득해야 함에도 당장의 대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이뤄진다.

이번에도 진심어린 추모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회사에 대한 분노는 당장의 불매로 이어진다. 그러나 거리 있는 진심은 그 영향이 오래가기 어렵다. 진짜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회사다.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인본주의적 인식이 필요하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수많은 뉴스 카메라 앞에서 기업의 대국민 사과가 이뤄진 후에도 노동자들은 빵을 만들고 있고,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라는 말은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다. 기업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면 말이다. 피해자가 목숨을 잃은 후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회사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김수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