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희 (gahee@skkuw.com)

엇갈리는 판결에 지지부진한 소송

정부 변제안에 일본의 참여가 결여됐다는 지적도 있어

 

지난달 6,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가해 기업이 아닌 제3자인 국내 재단을 통해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이른바 3자 변제안(이하 변제안)’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한일관계를 위한 결단임을 밝혔지만, 일본 가해 기업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부상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은 30년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 가해 기업에게서 직접 배상금을 받기 위해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오고 있다. 1990년대에는 일본에서 강제동원소송을 진행했지만 모두 패소했고, 일본 기업의 국내 자본으로 배상을 받기 위해 2012년부터 국내 법원을 찾았다. 그 결과 14명의 피해자가 2012년 대법원으로부터 미쓰비시중공업(이하 미쓰비시)과 일본제철 등 일본 가해 기업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인정받았으며, 2018년에는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이 피해자에게 1인당 1~15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일 청구권 협정, 소송의 발목을 잡다

그러나 일본 측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배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일 청구권 협정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장할 수 있는 재산권의 처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박정희 정권에서 맺었던 협정이다. 일본 측은 당시 협정 제1조에 따라 우리나라에 무상으로 3억 달러를 지급했고, 2억 달러의 정부 *차관을 제공했다. 또한 양 국가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는 제21항에 따라 일본은 강제동원 문제의 개인 청구권이 완전하게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구권의 원인이 일제의 식민 지배라는 점이 협정에 명시돼 있지 않고, 협정을 적용받는 대상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한·일 청구권 협정 이후 강제동원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는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대한 국내 법원의 판결도 엇갈린다. 앞선 2012년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021, 강제동원의 또 다른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의 1심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려 소송이 종료됐다. 식민 지배와 강제동원의 불법성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됐다는 자료가 없어, 2012년 대법원의 판결이 국내법적인 법 해석에 의거했다는 판단이었다.

한편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았던 미쓰비시와 일본제철 또한 같은 사유로 배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일제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일본이 우리나라 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법이 없고 추가적인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소송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전했다.

 

국내 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한다고?

법적 결말이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달 6,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 제3자로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외교부는 장기간 경색된 한일관계를 위해 국익 차원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반도체 부품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등 강제동원 문제에 경제보복을 벌이고 있어, 변제안은 한일 경제 관계를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취한 조치로 보인다.

지원재단은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 정부 자금에 기반해 규모를 키웠던 포스코와 한국도로공사, KT&G(전 한국담배인삼공사) 등의 국내 공사기업이 재원 조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다. 변제안이 이행된다면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14명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총 약 40억 원이 배상될 예정이다.

 

법적 걸림돌을 마주한 제3자 변제

전문가들은 변제안의 법적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표하기도 한다. 민법 469조에 따라 피해자가 제3자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제3자의 배상이 불가능하다. 현재 14명의 피해자 중 8명의 피해자는 변제안을 받아들였지만 3명의 피해자가 이를 거부했으며, 나머지 3명은 연락이 닿지 않은 상태다. 변제안을 거부한 3명의 피해자는 일본 측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정부는 변제안을 받아들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진행하되, 거부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할 것을 고려 중이다. 다만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제완 교수는 변제에 대한 공탁은 채권자가 부당하게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에 인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추후 공탁의 무효를 확인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면, 공탁 가능 여부에 대한 법률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일본 측의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지원재단이 우선 제3자로서 변제한 뒤 일본 가해 기업에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지원재단과 일본 가해 기업은 법률상의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구상권 행사가 불가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때 법률상 이해관계란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자신의 권리와 이익에 영향을 받는다면 생성되는 관계를 말한다. 김 교수는 지원재단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조성된 금액으로부터 대출받았었다고 할지라도 법적인 이해관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또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 밝혀, 배상에 대한 일본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직접적인 일본의 참여는 없어

정부는 변제안을 발표하며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후속 조치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일본 가해 기업이 지원재단의 배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 ‘미래청년기금(가칭)’의 형태로 참여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채무자인 일본 가해 기업이 가해 사실, 즉 채무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지원재단에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전망이기에 이러한 형태의 장학금이 등장한 것이다. 해당 장학금에는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이 가입된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일본이 지원재단에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장학금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조치에 참여하게 되면 차후 강제동원 사실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참여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학가에서는 미래청년기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16, 30여 개의 대학생 단체가 발족한 ‘2023 한일정상회담 규탄 대학생 행동은 용산역 광장에서 미래청년기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인사캠 정문에서 우리 학교 졸업생 중 일부가 주축이 돼 해당 변제안을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변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들은 일본 가해 기업으로부터 배상금을 받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을 맡고 있는 김 변호사는 채권자가 동의하지 않고 거부하는데도 제3자가 변제하는 것이 유효한지 법원을 통해 판단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지난달 26,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배상금을 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을 강제집행 하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결국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일본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가해자로서 강제동원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인권 침해에 대한 재발 방지와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차원에서 가해자가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소한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일본 측이 불법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며, 이것이 한일 관계 회복의 시작점이 돼야 할 것이다.

◇차관: 정부나 기업, 은행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오는 것.

◇공탁: 법령의 규정에 따라 금전·유가 증권 따위를 공탁소에 맡겨 두는 것. 여기에서 공탁소는 법원이다.

 

ⓒ경기신문 캡처
ⓒYTN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