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음악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면이 주어졌다. 음악에 대해 쓸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이 왜 멋진지 설명해보도록 하자.

음악은 어떤 시간을 붙잡아버린다. 지금 핸드폰을 들어 음악을 틀어보자. 3분이든 5분이든 8분이든, 일정한 시간이 제시되고 그 시간 동안 음악은 재생된다. 지정된 시간 동안 지정된 속도로 펼쳐진다.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음악에는 ‘속도’라는 속성이 내재해있다. 글이나 그림은 감상자 자신이 임의로 정하는 속도에 맞추어 흘러가고, 이를 통해 작품이 감상자의 세계에 스며든다. 반면 음악은 이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 재생되는 순간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달리는 음악에 의해, 이를 듣는 이와 그를 둘러싼 세계의 시간은 모두 그 음악에 종속되고 만다. 문장이 거창하지만 아주 간단한 얘기다. 어느 날 어떤 순간에 재생한 음악이 그날 날씨나 상황, 기분과 맞아떨어지는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잘 어울리는 배경 음악 하나로, 우리의 주변은 순식간에 영화나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적당한 음악 한 곡은 현실에 딱 붙어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를 현실로부터 살짝 떨어뜨려 그의 세계로 데려가 준다.

음악은 ‘듣기’를 통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이 공개되었는데, 뮤직비디오를 재생하는 내내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음악은 ‘들린다’. 청각이 전제되어야, 그러니까 ‘들을 수 있어야’ 향유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쉽게도 한계가 분명하다. 들을 수 없으면 나는 그 음악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만큼 음악은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음악이 ‘오직’ 청각인 것은 아니다. 음악은 소리 그 이상의 것을 줄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고, 여러 종류의 감각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우리에게 ‘듣기’를 통해 창문에 붙은 빗방울을 보게 하고, 장마의 물비린내를 맡게 한다. 그러므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하는 음악은... 상당히 멋지다.

물론, 음악에 대한 이런 생각은 종종 지나친 이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런 이상도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상을 꿈꾸며 현실에 음악을 가미하는 일은 우리를 지독한 현실로부터 약간 떨어뜨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더 나은 순간을 줄 수는 있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을 듣자. 여유 없는 현실에 아주 약간의 낭만을 더해보자.

 

홍서연(인과계열 23)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