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선우 기자 (sunshine6833@skkuw.com)

초전도 현상에 관한 이론은 BCS 이론뿐

LK-99, 상온·상압 초전도체 아니라고 짐작돼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퀀텀에너지 연구소와 고려대 및 한양대 교수 연구팀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이 게재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연구진은 구리, 납 등을 이용해 새롭게 만들어 낸 ‘LK-99’가 상온과 상압에서 초전도체의 특성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초전도체란 무엇이며 이것이 상용화되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초전도 현상이 일상에서 나타나는 상온·상압 초전도체
초전도체는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이다. 초전도 현상은 많은 양의 전기를 전할 수 있다는 뜻으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특정 온도 아래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돼야 하고 외부 자기장에 반발하는 ‘마이스너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 1911년 물리학자인 오너스는 수은의 전기적 특성에 관한 실험을 하던 중 영하 243.15도 미만에서 수은의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후 여러 물리학자는 다양한 조합의 화합물이 어떤 온도 아래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지 실험했다. 대부분의 물질이 영하 200도 미만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였는데 북극의 최저 온도가 영하 70도인 만큼 이는 실생활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온도다. 초전도체의 자기장을 이용해 신체 내부 영상을 촬영하는 MRI의 검사 비용이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기 위해 액체헬륨과 질소로 계속 냉각시켜야 하기에 유지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온도를 높이기 위해 온도와 정비례하는 압력을 높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소로 만들어진 금속은 수백만 기압의 매우 높은 압력을 주면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압력 또한 일상에서 구현하기 어렵다.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매우 낮은 온도 또는 매우 높은 기압이라는 특정 조건이 아닌 일상적인 환경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기에 화제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초전도체, 저항 없이 전기를 흐르게 하다
상온·상압 초전도체의 상용화는 전기 산업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초전도 현상의 저항이 0이 되는 성질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전기 저항은 전자들이 전선 속을 이동할 때 원자들과 충돌하며 생기는 것으로 전기 저항이 클수록 발열이 심해져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우리 학교 물리학과 최한용 교수는 “초전도체로 전선을 만들면 발열이 생기지 않아 화재의 위험도 거의 없어지고 전력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흔히 쓰이는 구리 전선을 사용하면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의 4%가 저항 때문에 사라지고 이로 인한 손실액은 매년 조(兆) 단위에 이른다. 하지만 초전도체로 전선을 만들면 이만큼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또한 발열이 없기 때문에 기계 과열이 많이 발생하는 공장 등에서 별도의 냉각 장치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경제적이다.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친환경적인 전기 산업을 만들 수도 있다. 포항공대 전기전자공학과 공병돈 교수는 “저항이 0이기에 전류가 한번 생성되면 계속 흐른다”며 “무한동력기관과 유사하게 에너지를 추가로 공급해 주지 않아도 무한히 전류가 흐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로 더 이상 전기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초전도체가 상용화되면 비용과 환경 측면에서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 BCS 이론 
이번 논문에서는 실험 데이터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그러나 실제로 초전도 현상을 관측했다고 해도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학교 물리학과 황정식 교수는 “현재 초전도 현상에 관해 물리학에서 정립된 이론은 BCS 이론뿐”이라고 말했다.

BCS 이론은 전자들이 쌍을 이룬 ‘쿠퍼쌍’을 이용해 초전도 현상을 설명한다. 황 교수는 “일반적으로 전자 2개가 있으면 둘 다 음전하이기 때문에 서로 밀어내 쌍을 이룰 수 없지만 물질 내의 특정 환경에서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쿠퍼쌍은 양이온들이 특정 온도 이하에서 격자 구조로 배열돼 있을 때 만들어진다. 원자는 음전하를 띠는 전자와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으로 이뤄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금속 화합물을 만들 때 전자는 원자에서 떨어져 나가 원자 밖을 돌아다닌다. 전자를 잃은 원자는 양전하를 띠는 양이온이 되고 전자가 양이온의 사이를 지나다니며 전류가 흐른다. 이때 양전하인 양이온은 음전하인 전자 쪽으로 끌리지만 이는 전자가 이동하는 속도보다 현저히 느려 양이온들이 모이는 도중 전자는 이미 그 사이를 지나간다. 뒤늦게 모인 양이온들에 의해 순간적으로 그 공간은 주변보다 양전하가 세지고 이에 음전하를 띠는 다른 전자가 이 공간으로 끌려온다. 그러면 마치 끌려온 전자가 앞선 전자를 따라가 쌍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렇게 생성된 쿠퍼쌍의 전자와 전자 사이의 거리는 꽤 멀기에 그 사이에 무수한 전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서로 겹치는 형태로 쿠퍼쌍이 생성되지만 쌍을 이룬 단 2개의 전자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모인 양이온들 때문에 다른 전자가 끌려와 앞선 전자와 쿠퍼쌍을 이루는 모습. ©유튜브 채널 Higgsino physics 캡쳐
모인 양이온들 때문에 다른 전자가 끌려와 앞선 전자와 쿠퍼쌍을 이루는 모습. ©유튜브 채널 Higgsino physics 캡쳐

또한 생성된 쿠퍼쌍들은 마치 하나의 무리처럼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일반적으로 전기 저항은 원자와 전자가 부딪히는 것과 더불어 내부에 불순물이 있거나 결함이 있을 경우에 발생하지만, 쿠퍼쌍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황 교수는 “군대에서 촘촘히 무리 지어 행진하면 그 사이에 다른 것들이 끼어들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며 “생성된 쿠퍼쌍들은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불순물이나 결함의 영향도 받지도 않아 저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BCS 이론은 영하 약 243도 미만의 조건만을 전제로 하기에 이보다 높은 온도 혹은 압력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물질인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 황 교수는 “이론이 새롭게 정립되려면 일단 명백한 실험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초전도 현상이 관측되는지를 제대로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러 개의 쿠퍼쌍이 하나의 무리처럼 이동하는 모습. ©유튜브 채널 Higgsino physics 캡쳐
여러 개의 쿠퍼쌍이 하나의 무리처럼 이동하는 모습. ©유튜브 채널 Higgsino physics 캡쳐

초전도체의 현주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번에 국내 연구진이 게시한 논문에는 LK-99를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어 여러 국가에서 이를 재현하고 있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맞는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지난 16일(현지 시간)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독일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 연구팀이 LK-99가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LK-99 자체의 성질 때문이 아니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LK-99가 특정 온도에서 저항이 0에 가깝게 급감하는 것은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의도치 않은 다른 물질 때문이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의 LK-99 검증위원회 또한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불순물을 최소화해 LK-99 샘플을 제조했지만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황 교수는 “조만간 확실한 결론이 나겠지만 여러 전문가는 이미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의 개발은 산업과 기술의 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커 앞으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 황 교수는 “상온·상압 초전도체와 같은 새로운 물질의 개발에 있어 그 물질의 성질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며 “신물질 개발 분야의 지원과 발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의 신물질 개발 연구실과 비교해 볼 때 국내 연구진에 많은 지원과 발전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