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지빈 기자 (zibini930@skkuw.com)

환경 보호 효과와 경제적 이익 가져다줘

성장 가능성 높지만 제도적 보완 필요해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 따라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판매 비중을 늘리면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등록된 전기차는 약 16만 4천 대로 전년 대비 약 64% 증가했다. 전기차 사용이 증가하면서 수명을 다한 폐배터리의 양 또한 늘어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폐배터리는 지난해 440개에서 2025년 약 8,300개, 2029년엔 약 7만 8,900개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수많은 폐배터리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재활용 기술이 관심을 받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도 주기적 교체가 필요하다
전기차 배터리는 노트북, 휴대전화처럼 반복해서 충전해 쓸 수 있는 이차 전지의 한 종류다. 양극재와 음극재 등으로 구성된 이차 전지는 양극재에 저장된 리튬 이온이 양쪽 극을 번갈아 이동하며 전기를 발생시키는 원리로 작동한다. 이때 리튬 이온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차를 충전할 때는 양전하를 띄는 리튬 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해 음극재는 상대적으로 양극을 띄게 된다. 반면 주행할 때는 음극재로 이동한 리튬 이온이 상대적으로 음극을 띄는 양극재로 이동하며 전류를 발생시켜 배터리가 방전된다. 음극재의 소재로는 주로 흑연이 사용된다. 흑연은 전기 전도성이 높고 여러 층이 겹겹이 쌓인 구조를 하고 있어 리튬 이온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리튬 이온은 음극으로 이동하며 흑연의 층 사이로 들어가는데, 이때 흑연이 조금씩 팽창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오랜 기간 반복되면 음극재의 구조가 무너져 배터리의 성능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100% 충전 상태에서 0%가 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을 1회로 할 때, 500회 이상 사용하면 전기차의 주행 가능 거리가 줄어들고 배터리 방전 속도가 빨라지는 등 문제가 생겨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본다. 500회 가까이 사용하는 데에는 약 10년이 걸리며 이후에는 배터리를 교체한다.
 

폐배터리 재활용의 환경적, 경제적 효과
전기차 배터리 교체 과정에서 폐배터리를 일반 쓰레기처럼 처분하면 환경에 문제가 된다. 우리 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이제찬 교수는 “폐배터리의 원자재로 쓰이는 리튬이나 코발트 같은 중금속은 유독물질이기 때문에 매립하거나 소각하면 토양이나 지하수에 심각한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폐배터리를 안전하게 처분하는 방법으로 재사용과 재활용이 있다. 폐배터리는 남은 성능으로 상대적으로 주행 거리가 짧은 골프 카트나 전기 자전거 등에 재사용된다. 하지만 그곳에조차 쓰일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낮을 때는 배터리 속 원자재를 추출해 새로운 배터리를 제조할 때 재활용한다. 재활용은 배터리 속의 유독물질들을 배출하지 않고 새로운 배터리에 활용하기 때문에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된다. 또한 재활용은 부족한 원자재의 공급을 보완해줘 경제적 이익까지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 중 니켈은 전체 생산의 약 3분의 2를 상위 3개국인 △러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코발트는 전 세계 생산의 약 70%를 콩고가 차지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전기차의 수요 증가로 배터리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해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큰 위기를 맞았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통 수입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를 구하기 때문에 해당 원자재를 보유한 국가들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따라서 폐배터리에서 원자재를 추출해 재활용하면 수입 비용이 절감돼 경제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원자재 채굴 과정에서도 탄소가 많이 발생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므로 재활용을 통해 환경적, 경제적 이득을 모두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 학교 나노과학기술원 김영준 교수는 “원료 수입을 통해 새롭게 배터리를 제조하는 과정보다 폐배터리 속 원자재를 재활용해 배터리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약 20~30%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폐배터리 재활용, 어떻게 이뤄질까
폐배터리 재활용은 폐배터리를 회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배터리를 회수하기 위해 한국환경공단에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배터리를 수거해 성능을 평가한 후 재사용, 재활용 여부를 정해 전문 처리업체로 보낸다. 성능평가 결과 재활용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본격적인 원자재 회수 공정을 거치는데, 이는 전처리 공정과 후처리 공정으로 나뉜다. 전처리 공정은 △방전 △해체 △분쇄의 과정을 거친다. 폭발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배터리를 방전시킨 후 해체하고 분쇄해 가루로 만드는데, 이때 만들어진 가루를 블랙파우더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블랙파우더는 원자재 회수를 위한 본격적인 과정인 후처리 공정을 거친다. 후처리 공정은 고온의 열을 이용하는 건식제련과 산 용액을 이용하는 습식제련으로 나뉜다. 건식제련은 블랙파우더를 고온에서 가열해 액체로 만든 뒤 그 속에서 코발트와 같은 금속을 분리하는 과정이다. 이는 과정이 간단하고 화학 반응 속도가 빨라 대규모 생산에 유리하지만, 회수할 수 있는 금속의 종류가 한정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반면 습식제련은 블랙파우더를 산 용액에 녹인 후 △니켈 △리튬 △망간 △코발트 등을 선택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특정 용액을 첨가해 금속을 분리해 내는 과정이다. 이때 이 특정 용액은 산 용액과 섞이지 않는 특수한 성질을 갖고 있다. 건식제련은 비교적 과정이 간단하며 비용도 적게 들지만 열로 녹이는 과정에서 금속이 훼손되므로 금속을 더 많이 회수하기 위해서는 습식제련이 선호된다. 이렇게 회수한 원자재를 활용해 부품을 만들어 원래의 방식대로 새 배터리를 제조하는 것이 폐배터리 재활용이다. 

폐배터리를 향한 기업들의 관심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산업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 6월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인 ‘지속 가능한 배터리 법’을 승인했다. 해당 법안은 폐배터리로부터 회수하는 원재료의 양을 규정한다. 오는 2027년까지 원래의 양으로부터 리튬은 50% 이상, 코발트와 니켈 등은 90% 이상을 회수해야 하며 2031년에는 각각 80% 이상, 95% 이상으로 그 기준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미국 정부도 폐배터리 재활용 기반 시설에 2,050만 달러를 투자하고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기업들에 3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는 등 해당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올해 약 7,000억 원에서 2030년에는 약 12조 원, 2050년에는 약 60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국제적인 움직임과 함께 국내 기업들 또한 폐배터리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SDI는 2019년 일부 공장에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외에도 SK이노베이션, 포스코홀딩스 등 여러 기업이 관련 산업에 뛰어들었다.

ⓒ한국경제 캡처
ⓒ한국경제 캡처

더 나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폐배터리 재활용은 그 과정에서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에서는 한 개의 배터리 성능을 평가하는 데에 약 8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많아야 하루에 2개의 배터리를 검사한다. 또한 재활용을 위해 폐배터리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부품 사이에 붙은 실리콘을 떼어내야 하는 등의 수작업이 필요하므로 들어가는 시간과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전기차 수가 늘며 폐배터리 수 또한 늘어나면 재활용 과정의 비효율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 교수는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을 위해 배터리 규격이 통일되면 좋겠지만 전기차는 아직 발전 과정에 놓여 있어 이를 통일하기는 이르다”고 전했다. 또한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배터리의 재사용, 재활용 여부를 가르는 법적인 기준이 국내에 부재하기 때문에 훗날 폐배터리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김 교수는 “미래에 여러 기업이 사업에 참여하면 폐배터리를 직접 소유해 재사용과 재활용의 경제적 가치를 누리기 위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폐배터리의 소유자를 결정하는 법적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이 교수는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고 기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배터리를 처분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탄소중립=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를 막아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 수준으로 낮추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