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서진 기자 (seojinch@skkuw.com)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통념적으로 우리는 지도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따라서 누군가를 위하거나 무언가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리 브로턴은 그의 저서 『욕망하는 지도』에서 지도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욕망을 투영한 채 그려져 왔으며, 지배적 권력이나 권위와 매우 밀접하다고 말한다. 유럽 열강들에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며 탐험과 정복의 열망을 자극하던 지도는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관념적이던 국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촉진했고, 20세기에는 새로운 세계의 중심을 지정하며 정치적 욕망을 투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리 브로턴에 따르면 2차원 평면에 둥근 지구를 옮기는 과정에서 지도는 필연적으로 세계의 일부를 누락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누구도 편들지 않는 것 같던 지도는 사실 “세계를 단순히 반영하기보다 세계에 관해 제안”하고 있으며, 과학적 측량 방법이 보편화된 지금 혹은 근미래에도 “지도는 불가피하게 특정한 강령을 추구하고, 다른 대안은 버린 채 특정한 지리적 해석을 고집하고, 결국에는 지구를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것”이라는 예언이 이어진다. 

다시, 지도는 누구의 편일까? 

오는 19일까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의 기획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기존의 서구 중심적 지정학에서 탈피해 대안적 지도 그리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전시의 도입에서는 놀란 오스왈드 데니스의 작품 <아토피아 필드>를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가상의 식민지 공간을 다이어그램 지도로 그려낸다. 지도는 커다란 카펫의 형태로 제작돼 밟고 서거나 위에 눕는 등 관객들의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기하학적 도형과 기존의 지리적 기호들이 혼재된 지도에는 하나의 종착지를 가리키지 않는 화살표들과 함께 지명 같은 모양으로 글이 적혀 있다. “이곳은 우리의 종착점”, “소유물이 아닌 세상”과 같은 텍스트는 기존의 지도가 포함하지 않는 경계 밖의 가치를 관객이 존재하거나 머무를 수 있는 땅 위에 옮긴다. 

미래 지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전시장에서는 최현숙의 미디어아트 <THE TUMBLE>을 만날 수 있다.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부유하며 씨를 퍼뜨리고 번식하는 식물인 회전초를 촬영한 작품이다. ‘cut the roots’라는 텍스트가 여러 차례 반복되며 화면을 채운다. 뿌리를 자르고 자신의 원천을 벗어나는 회전초는 본질적으로 정처 없는 생물이다. 정주하지 않는 현대의 디아스포라 몸들과 마찬가지다. 본래 지도에는 움직임도, 방랑도 없다. 그러나 전시는 우리에게 ‘이것 역시 지도’라 말한다. 

현대적 지도의 중심은 열강이 아닌 gps가 좇는 이용자의 위치다. 먼 예전 누군가의 정복욕을 자극하던 미지의 땅은 이제 지도에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존재가 지도 위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여전히 영토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도는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않나. 지금 우리의 지도는 어떤 세계를 정의하고 있나. 

고백하자면 지도를 그리는 일은 꼭 기사를 쓰는 일과 닮았다.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음에도 오직 사실뿐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껏 지면에 그었던 선들이 지도 위 국경만큼 완고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서진 차장.
최서진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