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예원 기자 (nyaong127@skkuw.com)

인터뷰-이기주 기자

사회에 참여해 영향력을 끼치고자 기자를 꿈꿔

현상을 다루는 단발 기사보다는 이면에 대한 깊은 취재를 추구해

사회를 개선하고 싶었던 소년은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하지만 서른 살 여름, 광우병 집회는 사회 참여를 향한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고 그를 사무실에서 현장으로 이끌었다. 올해로 기자 생활 16년 차에 접어든 이기주 기자는 현재 MBC 사회부에서 경찰 취재 팀장을 맡고 있다. 깊이 있는 취재로 현상 이면의 사회 구조적 문제에 집중하는 이기주 기자를 만나봤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IMF가 발생했어요. 이 시기에 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매일 몇천 명씩 정리해고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정치적 부정부패가 심했고 길거리에서 통곡하는 사람도 많았죠. 이런 문제의 원인이 경제가 아닌 정치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가 위기가 발생하지 않게 정치를 잘하는 방법을 공부하고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어요. 건강한 20대 지성인으로서 사회 개선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뭔지 알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전공 공부를 해보니 플라톤이나 아테네 민주정과 같은 철학적인 내용이 많았어요. 학교 밖에서는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이론적 학문을 배우는 것에 큰 괴리감을 느꼈죠.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겉돌았어요. 물론 현실과 맞닿은 수업에는 관심이 있었어요. 특히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수업이 좋았어요. 이 수업을 들으며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면 정치적 부패를 방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여러 생각 속에서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됐죠.
 

대학 시절 열심히 활동했던 단체가 있다면.
대학 시절 지방자치에 참여해 지역사회 문제를 직접 해결한 경험이 있어요. 다음 카페나 프리챌 등의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제가 거주하던 지역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했죠.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은 3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하신 분도 계셨어요. 모임에서는 중앙 정부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지역의 소소한 사안들을 다뤘어요. 대표적으로 수질이 안 좋은 동네 약수터의 토사 유출 문제를 파악하고 하천 정비를 시도했어요. 요즘의 국민신문고 같은 창구를 통해 기초지역자치단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매주 얼마나 개선됐는지 점검하기도 했죠. 이렇게 지역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하는 실천적인 활동이 재밌고 좋았어요.

또한 2개 이상의 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분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했어요. 거기서 청각장애가 있으시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하시며 다른 중복장애인분들을 열심히 도우시는 분을 알게 됐어요. 그분의 봉사 정신에 감동해 함께 청각장애인분들을 돕는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1년간 청각장애인분들과 많이 교류하다 보니 수화 실력이 빠르게 늘었어요. 대학교 3학년이던 2003년에는 수화 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단체 활동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취업난이 심하니 일단 빨리 취업하고자 노력했어요.
 

첫 직업은 기자가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첫 직장 생활은 어땠는지. 
첫 직장은 삼성SDI의 2차 전지 사업부였어요. 그곳에서 당시 유망한 직종이었던 해외 영업을 담당했죠. 삼성에서의 생활은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같았어요. 무역회사에서 일했고 무역 책을 사서 공부했던 점이 비슷했죠. 회의록 정리를 담당했던 신입 시절, 회의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무역 전문 용어는 한국어인데도 너무 어려워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첫 직장에서는 이렇게 회사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매일 신제품과 매출, 보너스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어요. 일이 너무 바빠 사회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죠. 그렇게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싶었던 대학 시절의 포부는 잠시 잊혔어요.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그러던 2008년 6월의 어느 날, 밤 10시쯤 퇴근을 위해 종각역으로 향하던 길이었어요. 그곳에서 광우병 집회를 벌이던 시위대가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이때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면서 너무 돈만 좇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가 속물 같았고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때 마침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이 보였어요. 문득 기자가 되면 하고 싶은 사회 참여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30살 여름이었죠. 직장에서의 일이 흥미로웠고 진로를 바꾸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에 딱 6개월만 기자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대학 시절 기자 지망생이었던 친구들이 잇따라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기자 관문이 좁음을 알았기에 기존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도전하기로 했죠. 그때부터 TOEIC과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신입 기자를 모집하는 공채가 나오면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꿈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나이 제한으로 지원이 불가한 회사도 있었고, 일 때문에 면접에 가지 못하기도 했어요. 서류나 필기에서 탈락하기도 했죠. 그렇게 계획했던 6개월이 흘러 12월이 됐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한국경제미디어그룹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운 좋게 한국경제TV에 합격하며 기자 생활이 시작됐죠. 
 

한국경제TV에서 MBC로 이직한 이유가 있다면. 
한국경제TV에서 2009년부터 4년 정도 금융 분야를 담당하며 근무했어요. 이 시기 기자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죠. 그러나 한국경제TV는 다루는 분야가 경제와 증권, 부동산 등으로 제한적인 매체예요. 이는 기자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포부를 실현하기에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종합 매체인 MBC에 경력 사원으로 지원하게 됐고 2013년 MBC에 합격했어요. MBC에서는 지금까지 △경제부 △국제부 △사회부 △선거방송기획단 △정치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어요. 특히 2019년 사회부의 인권팀에 속해 약 8개월간 버닝썬 클럽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경찰과의 유착 △마약 투약 △탈세 등의 의혹을 집중 보도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 
 

취재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취재가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자가 단발 기사로 하루 특종을 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깊이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건의 표면적 현상을 전하는 데 그치는 단발 기사는 금방 잊히기 쉬워요. 취재가 사회 개선으로 이어질 정도로 취재의 영향력을 키우려면 현상 이면의 구조를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집회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법대생이 이들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는 청소노동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으며 일단락됐죠. 어떤 기자는 이 사건을 법대생의 고소 결과에 대한 단발 기사로 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취재가 사회적 관심과 변화로 이어지려면 사건의 배경인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나 청소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 등을 파헤쳐야 하죠. 이를 통해 단순한 고소 사건을 하청노동자에 대한 부당 처우 등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기획 취재로 만들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이렇게 취재의 영향력을 키우는 일은 특히 누군가의 죽음을 다룰 때 더욱 중요해요.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 진상을 밝히는 일은 기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기자는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을 ‘어느 30대 여성 교사가 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교사가 최근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보고 부검을 통해 사건 경위를 밝힐 예정이다’와 같이 단 몇 줄로 전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죽음을 더 취재해 보면 학부모의 갑질, 학교폭력 사건의 석연치 않은 해결, 이를 혼자 해결했던 교사의 부담 등 가려져 있던 죽음의 배경을 알 수 있죠. 이처럼 기자는 현상 너머의 진실을 살펴 취재의 영향력을 키워야 해요. 
 

깊이 있는 취재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렇게 깊이 있는 취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취재 과정에서 동료의 도움이 필요해요. 기자 혼자 여러 지역을 취재하기는 어렵고 최근에는 SNS에서 살펴봐야 할 것도 많아졌어요. 이에 팀 취재가 중요해졌죠. 팀 취재는 여러 기자가 취재한 바를 공유하며 협력하는 취재 방식을 말해요.

또한 현상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취재원의 협조가 필요해요. 그러나 기자는 검사처럼 취재원을 취조해 진술을 요구할 수 없어요. 취재원이 기자에게 사실을 알려줄 의무는 없는 것이죠. 또한 취재원과 유대감이 없는 피상적 관계에서는 취재원 내면의 진실을 알아내기 어려워요. 따라서 기자는 취재원과 유대감을 충분히 형성한 후 취재원에게 질문해야 해요. 이를 위해 취재원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진심을 전하는 것이 중요해요.
 

취재 시 주의할 점이 있다면.
특종에 눈이 먼 일부 기자들은 경찰로부터 전달받은 사건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기사화하기도 해요. 하지만 기자는 취재 전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성폭력 사건의 경우 상처가 아물지 않은 피해자는 사건을 알리고 싶지 않을 수 있어요. 이는 성폭력 사건 취재가 피해자의 일상에 큰 지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지난해 말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밤에 혼자 귀가하던 40대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보도된 적이 있어요. 취재로 인해 피해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는 일을 그만뒀고 재취업도 어려워졌다고 해요. 또한 취재를 통해 사건이 기사화되면 사건 당사자나 취재원은 보복 등의 위험을 얻게 될 수도 있어요. 따라서 기자는 취재로 인해 누구에게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나아가 특정 기업인이나 정치인 등을 고발하는 검찰의 진술을 토대로 한 취재는 특정인을 해칠 수 있어요. 이처럼 특정인을 해치려는 의도가 명확한 취재 역시 지양해야 해요.
 

현직 기자들과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접 기자가 돼보니 그 영향력은 예상했던 것처럼 중대하다고 느껴요. 유튜브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기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지만 기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어요. 그러나 현재 기자협회에 소속된 만 명 이상의 기자 중 다수가 깊이 없는 취재로 무해무익한 기사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은 기자가 권력이나 자본의 말을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실을 취재하면 좋겠어요.

또한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들이 기왕이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누군가를 해치려는 목적의 취재는 하지 말고 취재가 부족해 영향력이 무의미한 기사는 되도록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하고 싶어요.

이기주 기자. 사진ㅣ홍예원 기자 dreamer7@
이기주 기자. 사진ㅣ홍예원 기자 nyaong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