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진경 기자 (kmjnkg@skku.edu)

얼마 전 한 동생 녀석이 클럽데이가 뭐냐고 묻는다. “글쎄… 클럽데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린다는 그 클럽데이? 잘은 모르겠지만 클럽데이란 홍대 앞 젊은이들의 자유와 열정을 마음껏 내지를수 있는 날을 말하는 거야” 아마도 몇 달 전 내게 클럽데이에 대해 물어봤으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클럽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클럽데이’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감히 ‘클럽데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려 한다. 한마디로 요즘 클럽데이는 난장판이다. 음악을 즐기려는 이들의 해방구라기 보다 쾌락을 즐기려는 이들의 놀이터랄까. 싼 가격에 홍대앞 여러 클럽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클럽데이의 장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즐기기보다 더 많은 이성을 찾아 헤매는 것이 현실이다. 맥주 한 병 손에 쥐고 이 클럽, 저 클럽을 누비다 속칭 ‘물’ 좋은 클럽에 왔다 싶으면 정착해 탐색전을 벌이는 모습, 부킹만 없다뿐이지 나이트 클럽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리듬에 맞춰 춤을 추다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접근을 시도하는 ‘그’. 이내 마음에 드는 여성과 눈을 맞추고 도발적인 춤을 춘다. 그리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조용히 자리를 나서는데. 홍대 앞 클럽에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금욕주의자라 클럽 한구석에 앉아 조용히 음악만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클럽에서라면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맞겨 춤을 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이따금 마음에 드는 상대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언더 문화, 인디 문화의 산실이었던 홍대 앞 다양한 장르의 라이브 클럽은 사라져가고, 이제 남은 것은 몇몇 인기있는 힙합 클럽이다. 그 것도 힙합, 흑인 문화의 본 정신은 어디로 가버리고 치렁치렁한 옷에 그럴싸한 몇 마디 중얼거림만이 남았다. 이 곳이 바로 젊음과 에너지의 공간이라는 홍대 앞이라면, 그야말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기야 굳이 구분하기는 애매하지만 진짜배기 클러버(Cluber)들은 클럽데이에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클럽데이만 되면 몰려드는 인파들, 꽉 막혀버린 도로. 이 사이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외국인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언제부터 클럽이 내·외국인들의 만남의 장이 돼버렸으며, 이들에게 도대체 클럽데이는 무엇인가? 올바른 클럽문화의 정착, 우리의 자성과 각성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