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진가연 기자 (iebbi@skku.edu)

최근 학계는 소외돼 있던 기층민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해 역사의 지평을 보다 넓히려는 구술사 연구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구술사 연구는 그 특성상 주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객관성과 신뢰성을 요구하는 역사 연구나 사회과학 연구에서 사적 자료로서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구술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유도 국내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21세기를 주도할 역사학 담론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시사의 발달과 함께 구술사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구술 자료의 서사적 진실에 주목하게 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즉 문헌 자료도 사료가 될 당시에는 구술 자료처럼 미완성적이고 부분적인 과거의 재구성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인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구술 자료에 대한 관심은 △민족 △국가 △사회라는 거시적인 주체에서는 드러날 수 없었던 민중의 경험 및 기억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역사적 진실 규명까지 가능케 했다. 실제로 사료 발굴이 어려웠던 해방 이후, 좌익 활동에 대한 구술 증언들은 침묵해 온 현대사의 이면을 복원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구술사는 국내에서도 점차 사료로서 인정받는 사회적, 학문적 담론을 형성해왔다. 이에 따라 구술사의 연구 성과는 △민속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체육사나 예술학에까지 이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구술사연구소 이승연 총무간사는 “흔히 구술사의 범위를 정치와 역사적인 것으로 한정짓는 경우가 많은데 구술의 범위에는 생활, 문화, 심리, 언어, 여성사 등 다양한 분야가 모두 포함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2월에는 구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국내 최초의 한국구술사연구소가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8세기부터 풍부한 자료 및 지원을 바탕으로 구술사를 연구해온 서구에 비하면 한참 늦게 발을 들여놓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구술사연구가 가장 발달한 미국은 연구 초기부터 국가와 비영리 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자국 역사의 시초인 이주민과 원주민의 구술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해두고 있었다.

이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구술사 연구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특히 증가하는 구술채록자 수요에 비해 구술사 전문 양성소가 전무한 현실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이 간사는 “현지조사의 훈련을 받지 못한 연구자들이 구술사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술전문가 양성의 시급함을 알렸다.

이런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해 현재 한국구술사연구소는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구술채록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구술사 세미나 진행, 소식지 발간 등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이제야 막 빛을 보기 시작한 구술사 연구는 다양한 학문들과 연구를 도모하고 있기에 더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역사학의 중요한 줄기로서 구술사가 어떻게 발전을 거듭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