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촛불집회 현장 스케치

기자명 특별취재팀 (trident22@skku.edu)

서울의 흉물, ‘명박산성’이 가로막은 지난 10일의 광화문 앞. 그러나 시민들의 뜨거운 목소리만큼은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주최측 주장 70만명, 경찰측 주장 2만명의 수많은 인파가 광화문과 시청 앞으로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손에는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우려했던 경찰과의 충돌도, 일부 언론에서 그렇게 경고했던 선동이나 폭력사태 하나 없이 시민들의 ‘축제’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원하는 바도 행동하는 바도 각자 달랐지만, 모두들 ‘하나’였던 6월의 그날을 다녀왔다.

촛불집회 특별취재팀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신상현 기자 (sangpa88@skku.edu)
  손용성 기자 (blueblue@skku.edu)  
  박지수 기자 (ibdest@skku.edu)    

총학이 주도했던 학내 행사..“평화시위의 표본을 보여주자”

▲ 시국선언문을 읽고 있는 권인표 인사캠 총학생회장.
지난 10일 오후 4시 반, 총학과 각 단과대별 학생회는 금잔디에서 짤막한 시국선언과 함께 성균관대학교의 이름으로 6.10항쟁 21주년 기념 촛불 대행진에 참여하기로 하는 행사를 열렸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전사회적으로 퍼지고 있는 만큼 민족 성균관대학교의 학생으로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평화시위의 표본을 보여줌과 동시에 소고기 문제의 본질을 밝히도록 노력하자”는 우리학교 권인표(법02) 인사캠 총학생회장의 시국 선언과 각 단대장의 발언이 있은 후 우리 학교의 시위대는 목적지인 광화문을 향했다.

한편 이날 총학은 일각에서 학교의 대표로서 총학 내의 움직임이 그동안 소극적이지 않았냐는 지적을 인식한 듯, 앞으로는 총학이 나서 학내 여론을 한데 모으고 결집력을 가진 목소리를 내기로 약속했다. 쇠고기 파문 초기 학우들이 성대사랑 등의 커뮤니티를 통해 총학의 초기 활동이 미흡하고 다른 학교에 비해 전체투표를 실시하지 않는 등, 사회현안에 지나치게 덜 적극적이라는 비판을 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권인표 인사캠 학생회장은 “그동안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들어왔고, 일부는 사실”이라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소극적이라기보다는 신중론에 의해서 지금껏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기 주저한 것이다”며 해명했다. 이어 그는 “학내의 촛불집회나 총리 대담 등을 진행하면서 학우들의 여론 대다수가 쇠고기 협상에 대해 반대라는 것을 알았다”며 “앞으로는 총학생회의 모임인 세대교체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거나 공청회(지난 11일)를 개최해 학우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비폭력! 수십만명이 이뤄낸 ‘축제의 현장’
이날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소문로 입구까지 태평로 도로는 촛불집회 사상 최대 인파인 70만명을 웃도는(주최측 추산) 시민들로 가득 찼다. 행렬이 남대문 삼거리까지 드문드문 이어졌고 수많은 전화와 문자 때문에 일부 현장에서는 통신장애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특히 인사캠에서는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출발했던 우리 학교의 시위대 역시 시위 현장에 꽂힌 성균관대학교의 깃발을 보고 찾아오는 학우들로 인해 자리를 가득 메우게 되었다. 추후 인사캠 학우들과 자과캠 학우들이 한 자리에 모임으로써 비교적 큰 규모를 갖추게 된 우리 학교의 시위대는 다시금 한 목소리로 ‘성균관 대학교’를 외쳤고 이명박 대통령의 각종 정책들을 비판했다.

이날 학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던 정외과의 한 학우는 “식량주권과 생명이 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굴욕적인 협상을 진행한 정부엑 국민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번 사태의 본질에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있음을 지적했다.

광화문을 가로막은 컨테이너 박스 바로 앞쪽에 자리잡은 우리 학교의 시위대들은 행사 주최측에서 준비한 앰프의 소리가 웅웅거리는데도 불구하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가수 안치환 씨와 양희은 씨와 함께 영화배우 문소리 씨가 무대에 오르자 “선배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크게 환호하기도 했다. 끝없는 촛불의 바다에서 울려퍼진 ‘아침이슬’,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광야에서’ 등의 노래는 시민들의 참여와 호응을 더욱 불러일으켰으며, 분위기는 점차 고조되어 갔다.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모인 이번 집회는 더 이상 투쟁과 폭력의 장이 아닌, ‘화합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시위에 처음 참여했다던 김영숙(46) 씨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나쁜 것들을 많이 보여줄 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축제 분위기에 가까워 매우 유익했다”며 이번 집회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 시민들의 시위를 막고 있는 '명박산성'

그칠 줄 모르는 평화의 행진...경찰 측, 통제 전혀 없는 ‘무접촉 전략’ 써
행사가 끝나자 시민들은 오후 9시30분쯤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행진을 시작했고 우리 학교는 서대문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계엄령 이전 단계인 ‘갑호’ 경보 발령으로 경찰력이 모두 투입된 삼엄한 경비와 ‘비폭력’을 끝까지 유지하기로 한 시위대들로 인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위대들은 청와대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서대문-경찰청-서울역-광화문 앞에서 자유로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경버스로 ‘성벽’을 친 경찰청 앞에서 시위대들은 ‘폭력 경찰 물러가라’ ‘어청수 나와라’ 등 각종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국민의 권리와 재산을 지키는 경찰청과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자, 노구를 이끌고 행사에 참여한 김춘식(71) 씨는 “국민들이 정의로움을 지키려고 하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고 탄식했다.

▲ 촛불시위 현장에 도착한 이한열 열사 추모행진.
또한 청와대를 가는 길목만을 차단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경찰이 도로 상황을 전혀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거리 행진을 하는 시위대와 차가 한데 뒤엉키는 일도 일어났다. 자가용 운전자 김목현(33) 씨는 “청와대 지킬 병력은 그렇게 많으면서, 여기에 투입할 교통경찰은 한명도 없는거냐”며 “컨테이너로 12차선 길을 막을때부터 알았지만, 청와대만 지킬 줄 아는 경찰이 진정 시민을 위한 경찰이 맞느냐”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거리 행진이 있은 이후 시민들과 대학생들은 저마다 자유 발언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태의 원인인 쇠고기 문제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 등을 사회 각계각층이 모인자리에서 토로해 냄으로써 각종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들이 하나 둘씩 오고갔다. 안일웅(물리03) 학우는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당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이뤄나가는 과정이 독선이다”고 지적하며 “그의 독선적인 소통 과정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면서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소통 거부의 자세를 비판하기도 했다.

‘거대’했던 6.10 집회, 이후 행보는?
기본적으로 이번 시위는 기존 시위의 기조이기도 했던 ‘비폭력’과 ‘자유로운 축제의 분위기’가 잘 지켜졌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 지적했던 폭력시위와 배후설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를 기점으로 촛불집회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진 가운데 ‘촛불집회가 갈수록 정치 세력화 되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역시 점차 힘을 싣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호응에서 시작한 촛불집회의 순수성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 십만명을 한밤중에 거리로 나오게 할 만큼 쇠고기 파동이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 제기 역시 시민사회의 안팎으로, 나아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10일 이후 ‘Anti 2MB’이라는 커다란 구심점 아래 모였던 각종 목소리들이 점차 파편화 될 것이란 예상이 점차 현실화 되가고 있는 것이다.

▲ 시민들이 들어올린 수많은 촛불들.

그러나 지난 10일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스로의 ‘실력행사’를 별였다는 점에서 지난 6.10 집회의 의의는 역사적이라는 것이 학계의 진단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 간담회에서 “참여자 사이의 수평성, 연대성, 기동성이 두드러졌다”며 “지금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언제든지 대통령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발전된 시민 정신을 높게 평가했다.

수많은 논란과 우려 속에 치뤄진 지난 10일의 함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점차 처음의 ‘쇠고기 고시 철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서울의 아크로폴리스. 시청 광장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시민의식의 토대가 자라나길, 또 그 발전한 시민의식을 정부가 제대로 인식해 ‘다함께 소통하는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