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설치미술가 최화정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서울 종각역 쪽에 세워져있는 ‘세기의 선물’. 10층으로 된 이 황금탑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씨의 작품이다. 최정화 씨는 우리나라 국보 2호인 원각사지 석탑을 본떠 플라스틱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작품들에 값싼 형광재료들이나 금박을 씌우는 등 ‘고상한 예술’을 거부한다. ‘진짜와 가짜’, ‘고상함과 천박함’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를 만나 키치성을 활용한 예술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서 들어봤다. 

최정화 씨가 소장으로 있는 가슴개발연구소는 연구소라기보다는 놀이터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생기가 넘쳤다. 벽을 이루 듯 쌓여 있는 형형색색의 바구니들, 울트라 맨 가면이 쓰인 석고상, 온갖 종류의 인형이 나열된 진열장… 잔잔한 클래식 보다는 신나는 대중음악이 어울릴 법한 곳.

질문을 하러 앉은 기자에게 “일단 둘러보시고 시작하세요”라고 권유하던 그는 기자가 뭔가 ‘느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야만 자신의 예술이 완성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말하는 모토는 ‘your heart is my art’.

 

미술의 장벽을 허물다 

“제 작품은 설명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소수만을 위한, 배운 사람만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미술. 그게 좋은 현대 미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예술을 고상하게 만들지 않는다. 고급 예술이라고 여겨져 온 비너스 상을 빨갛게 물들이고, 얼굴에 가면을 씌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대를 졸업한 그는 학교가 아닌 시장, 골목길, 때로는 공사장에서 지금의 작품 세계를 구성해내기 위한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시장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이 갖는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항상 그대로 있는 석고상보다 오히려 일상생활에 밀접해있으면서 사소한 것들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죠”

그렇게 그의 작품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진짜와 가짜’의 구분 그 이상으로 미술과 미술 또는 미술과 관객 사이에 있는 장벽을 넘어선다. 그리고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언어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계속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가슴’이에요. your heart is my art. 그러니까 당신이 느낀 게 나의 예술이 되는 거죠”

키치 미술? 그런 건 없어!

키치 예술가로 불리곤 하는 그에게 키치 미술에 대해 질문하려 했지만 대뜸 “키치란 없는 거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실 키치는 진짜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 모조품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원화된 상태에요. 그래서 현대 미술에서는 키치란 없다는 겁니다”

“대다수 기득권에 대한 반대 의향을 뜻하는 개념이 키치였다면, 오늘날은 주류라고 불릴 만한 미술도 존재하지 않을 만큼 ‘자잘하게’ 구성돼 있죠. 어떤 작품이든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작품이고, 각자 자기 자신의 간지이고 깔이고, 그런거죠 뭐”

키치적 ‘요소’로 끌어내는 ‘물음표’
“물론 키치적 요소를 차용할 수는 있어요. 예를 들면 (기자가 앉아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이것도 제 작품인데 이 소파를 두르고 있는 천은 ‘가짜’ 루이비통 무늬를 하고 있죠. 기존 명품을 한 번 모방했다는 점에서는 키치적이지만 제가 이걸 다시 작품으로서 승화시켰기 때문에 지금 그 자체를 키치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것도 이제 독자적인 가치를 갖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가 키치적 요소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민을 갖게 하고 싶어요. 지난 2006년에는 일민 박물관에서 <믿거나 말거나> 전시회를 하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전시했어요. 출품을 의뢰하고 저는 전체적인 연출만 담당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박물관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서 기존의 개인전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다면 성공한 거에요”

지난 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모이자 모으자’ 행사도 이러한 맥락이다. 인사동과 잠실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이번 행사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다양하게 전시함으로써 ‘낯설으면서도 친숙한’ 키치적 요소를 차용한 것.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으면서도, 플라스틱이 뭐지? 라는 질문을 실생활에서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면 해요”

“미술은 부정의 부정의 역사라고 하잖아요. 계속해서 ‘물음표’를 찍는 것만큼 가치있는 미술도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