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남(경영06)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나는 스물다섯, 평범한 고시생이다. 평범하지만 아주 꽉 막혀 터질 것만 같은 나의 일상을 들춰보자면, 평일엔 학교 고시반에 아침부터 편의점 김밥을 물고 가서 책과 씨름하다 밤이 되면 맥주 한 캔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언제 월요일이었냐는 듯 시간이 지나고 나의 프라이데이 나잇부터 일요일까지는 술집에서의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들이다. 늦은 시간까지 많은 손님들을 맞다보니 주말에는 낮에 일어나도 비몽사몽이다. 단 하루의 안식일조차 허락되지 않음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애인을 만나고 지인들과 젊어서 노는 술자리를 가진다. 자연스레 나의 학업진도는 밀려만 가고, 계획은 반복해서 수정되고, 한낱 고시생의 고민과 스트레스는 늘어만 간다.
무거워지기만 하는 고민들을 안은 채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사장님의 지인분이 오셔서 앉으시고는 두런두런 얘기를 하시다가 옆자리 분이 하시는 푸념 섞인 하소연에 맞서 단박에 “고민하지 마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간 일일 텐데!”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신다. 그리고는 요즘 자기의 고민 없는 삶에 대한 재미를 가지고 일장연설하기 시작하시는데, 말하실 때의 눈가에 진 웃음주름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선명하게 패여 갔다.
사실 ‘내일은 없다’라는 식의 듣기만 해도 일탈의 자유가 느껴지는 말을 가까운 선후배 친구들끼리는 허세 섞어 말한다지만 불혹의 나이 한가운데에 계시는 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건 처음이었다. 적어도 나보다 생각해야할 것이 두 배는 많으실 나이실텐데,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의미의 불혹을 새삼스레, 아니 처음으로 몸소 체험했던 날이리라. 그분은 우리가 하는 고민거리의 대부분은 고민이 아닌 걱정이라고 하셨다. 사실 이걸 모르는 학우들이 많지는 않을 듯하다. 문제는 습관이지. 내일을 걱정하는 순간부터 불행은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술자리, 카톡창, 담배 피는 시간 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걱정’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걱정’할 나이가 아닌, 저지르고 싸지르고 무찌르는 빛나라 청춘, 아름다워라 청춘인데 말이지. 거창하게 나올법한 결론은 걱정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게 뭐라도 하라는 것이겠지만, 우선 어떻게 하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한다면? 1년 100번 작심삼일 하듯,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처럼 마부작침 한다면 아저씨 눈가의 주름 같은 스스로의 인생 중 한순간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값진 전리품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 즉 받아들일 줄 알고, 즐기고,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