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액자 속의 예술 -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속 노래 ‘Will the Circle Be Unbroken?’

 

‘5초 후 발사, 5, 4, 3, 2, 1…’ 당신을 태운 기계장치는 마치 로켓처럼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구칩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먹구름 낀 하늘과 찢어질 듯한 현악기 소리에 고조되는 긴장감. 시야를 가리던 먹구름을 지나 1만 5000피트 상공에 오른 그 순간, 분홍빛 하늘과 찬란히 빛나는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안내 음성이 나지막이 읊조립니다. ‘할렐루야.'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스팀펑크형 가상 도시 ‘컬럼비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스팀펑크는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시기의 증기기관 기술이 초월적으로 발달한 일종의 대체 역사 장르입니다. 하늘을 떠다니는 공중도시 컬럼비아에서는 빅토리아풍 디자인이 지닌 고풍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증기기관의 아날로그 감성과 같은 스팀펑크만의 독특한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플레이하게 될 주인공은 ‘부커 드윗’이라는 남자입니다. 그는 1890년 미군이 인디언을 대량 학살한 ‘운디드 니’ 사건에 가담했고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술과 도 박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그 후 약 20년이 지난 1912년, 부커에게 한 남자가 찾아와 ‘컬럼비아에서 한 여자를 데려오면 모든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부커가 처음으로 컬럼비아에 도착했을 때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이 있는데요, 바로 미국의 유명 찬송가 ‘Will the Circle Be Unbroken?’입니다. 1907년 작곡된 이 곡은 컨트리 음악으로 리메이크되며 더욱 유명해졌고 현재도 미국의 장례식에서 종종 불리고 있습니다. 후렴구의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저 하늘 위에 더 좋은 보금자리가 기다리고 있을까요?(Will the circle be unbroken by and by, by and by? Is a better home awaiting in the sky, in the sky?)’라는 가사는 죽은 이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죽음 이후 천국에서 삶이 이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드러냅니다. 이때 고리(Circle)는 사람과의 인연, 특히 가족 간의 인연이자 삶의 영속성을 뜻하죠. 잔잔히 흐르던 피아노 멜로디는 곧 합창단의 성가로 바뀌고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컬럼비아를 마치 하늘 위 천국과 같은 신성 한 곳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도시 곳곳에 배치된 컬럼비아의 건립자 ‘컴스탁’의 동상과 그를 찬양하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한 감상에 더욱 힘을 싣죠.

그러나 컴스탁을 신처럼 숭배하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가 꺼림칙하게 느껴집니다. 동화 같은 도시의 풍경 아래 얕게 느껴 지던 불안의 전조는 부커가 길거리 경품 추첨에 당첨되면서 실체를 드러냅니다. 사회자의 신호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온, 손발이 묶인 두 남녀. 경품은 다름 아닌 유색인종과 사랑에 빠진 백인 남자와 그의 연인에게 제일 먼저 야구공을 던질 기회였습니다.

스팀펑크는 산업혁명기의 눈부신 발전과 희망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시절 화려한 삶과 풍요를 위해 무참히 희생돼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와 유색인종입니다. 컬럼비아는 그러한 산업혁명 기의 모순이 반영된 도시로, 유색인종과 노동 계급은 하루 16시간을 내리 일하며 빈민촌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컬럼비아의 축제를 즐기는 *NPC들이 모두 잘 차려입은 백인인 점과 ‘얼마 전 감히 중국인이 내게 길을 물었다’는 그들의 대화를 돌이켜보면, 컬럼비아에 자리한 백인우월주의와 국수주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커는 그를 저지하려는 컬럼비아의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마침내 ‘엘리자베스’가 있는 기념비섬에 도착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컴스탁의 후계자로 지목돼 20년 가까운 세월을 탑에 갇혀 지냈지만 정작 자신은 갇힌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였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에겐 신기한 능력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균열(Tear)’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균열은 시간과 공간의 틈을 열어 또 다른 평행세계를 엿볼 수 있는 능력으로, 엘리자베스는 이 능력을 사용해 부커의 전투를 돕습니다. 그렇게 둘은 힘을 합쳐 컬럼비아를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컴스탁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중 부커는 빈민가에 버려진 기타를 발견하고 그의 반주에 맞춰 엘리자베스는 ‘Will the Circle Be Unbroken?’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아이에게 사과를 건네주며 부르는 이 노래는 원곡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느껴집니다. 가족 간의 인연을 의미했던 고리는 반복되는 억압과 폭력의 굴레를, 천국을 의미하던 하늘은 어긋난 사상의 공중도시 컬럼비아로 해석되죠. 컬럼비아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항하고자 조직된 반란군 ‘민중의 소리’는 게임 후반부에 이르러 승리를 거둔 뒤 그들이 당했던 방식과 똑같이 백인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약탈합니다. 결국 악습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으며 하늘 위 유토피아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Will the Circle Be Unbroken?’은 엔딩 크레딧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처음엔 담담히 노래하던 엘리자베스가 노래 후반부로 갈수록 울먹거리며 제대로 음을 내지 못합니다. 게임의 결말을 맞이한 뒤 듣게 되는 이 노래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의미로 플레이어에게 다가옵니다. 유대와 폭력의 굴레를 끊어내려는 부커와 엘리자베스의 선택은 큰 여운으로 남습니다. 스팀펑크 장르의 환상적인 외관과 이면에 담긴 치열한 저항의 움직임을 느끼기 위해 공중도시 컬럼비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NPC=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 종할 수 없는 캐릭터.

 

공중도시 컬럼비아 게임 내 캡처.
춤추는 엘리자베스 게임 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