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빈 (sb9712@skkuw.com)

펑크 문화 영향받아 사이버펑크 등장
다양한 개성의 파생 장르들로 이어져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 제시해

저항의 정신 ‘펑크’와 사이버펑크의 탄생

펑크(Punk)는 ‘폐물’, ‘가치 없는’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유행한 ‘펑크 문화’는 펑크의 사전적 의미처럼 본래 가치 없고 불량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문화 현상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음악과 미술, 패션 등의 분야로 퍼져나가며 인기를 끌었다.

그중 SF(과학소설)의 하위 장르로서 펑크가 처음 등장한 것이 바로 사이버 펑크(Cyberpunk)다. 1983년 부르스 베스케의 단편소설 ‘사이버펑크’에서 처음 언급된 사이버펑크는 사이버네틱스 (Cybernetics)와 펑크의 합성어로, 이후 1984년 윌리엄 깁슨이 쓴 소설 ‘뉴로맨서’ 를 통해 ‘첨단 기술에 지배받는 인류의 대항 서사’라는 장르성이 확립됐다. △인간성의 위기와 몰락 △초국가적 기업에 의해 통제되는 개인 △컴퓨터 기술의 확장으로 만들어진 사이버스페이스 등이 사이버펑크의 주요 특징이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이지용 교수는 “사이버펑크가 등장할 시기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용되던 과학기술 이 개인의 일상적인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그중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초기 발달 단계가 사이버펑크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론을 펼치기 어려웠던 1980년대에, 사이버펑크가 기술과 미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이버펑크 작품의 예로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가 있다. <매트릭스>는 인류가 가상 세계에 갇혀 생체 배터리로 전락한 사회에서 주인공 ‘네오’가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항하는 이 야기다.

사이버펑크로 메타버스 바라보기 미래
사회를 전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늘면서 사이버펑크는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촉망받는 미래산업이라고 불리는 메타버스 역시 사이버펑크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사이버펑크에서 시작된 사이버스페이스의 개념으로부터 지금의 메타버스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주를 이루는 지금과 달리 과거의 사이버펑크 작품들은 메타버스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평등과 독점, 부작용을 조명한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사이버펑크 소설 <스노크래시>는 해커인 주인공이 거대 기업의 음모를 막아내는 이야기다. 저자는 소설에서 소수의 프로그래머와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 메타버스 세계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부산가톨릭대 인성교양학부 박인성 교수는 “기술 그 자체를 해롭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 그에 대한 독점과 차별, 소외를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사이버펑크에서 찾을 수 있다”며 “미래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사이버펑크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낯설지만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는 방식이다”라 고 밝혔다.

다양한 기술을 펑크로 펼치다
사이버펑크가 등장한 이후부터 다양한 펑크 장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계관의 가장 핵심 원리가 되는 기술이나 개념 뒤에 펑크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지용 교수는 “사이버펑크를 통해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삶과 의식, 다양한 문화적 요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식이 생겨났다”며 “사람들은 시대를 바꿀만한 기술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양한 펑크 장르의 파생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증기기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평행세계를 다루는 스팀펑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증기기관의 투박한 움직임과 도시의 서구적 디자인은 산업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스팀펑크의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노동자 소외나 제국주의에 의한 전쟁, 식민 통치 등 어두운 이면이 함께 등장하며 대조되기도 한다.

이지용 교수는 “파생된 펑크 장르의 대부분은 이전 시대의 기술을 소재로 삼아 지나온 시대를 환상적으로 재해석해왔다”며 “사이버펑크만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의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는 사이버펑크와 다른 파생 펑크 장르가 각자 다른 곳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사이버펑크는 현실 세계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가상 공간을 제시하며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환상이 만들어낸 세계는 오히려 현실의 구조적 문제점과 불합리한 요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유도하며 사이버펑크의 사회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강화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파생 펑크 장르들은 특정 기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증기기관으로 이뤄진 세계관에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어떤 모습일지, 고도로 발달한 생명공학이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등을 다루는 것이다.

솔라펑크, 햇살처럼 밝은 미래로 마음을 사로잡다
펑크 장르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기후 위기, 생태계 파괴와 같은 환경 문제에 대응하며 등장한 ‘솔라펑크’가 그 예다. 솔라펑크란 태양을 의미하는 ‘솔라(Solar)’에 펑크를 합친 것으로, 태양열과 같은 재생에너지 등의 친환경적 기술을 소재로 하며 발전된 에너지 기술을 통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 사회를 제안한다.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소 X-미디어센터 이원진 교수는 “솔라펑크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대부분의 펑크 장르와 달리 낙관적 미래 사회를 상상하며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큰 특징”이라며 “세련된 세계관을 통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환경 문제를 몰입력 있고 체감할 수 있게 다뤄 참여를 유도한다”고 밝혔다.

솔라펑크의 예시로 2018년 개봉한 영화 <블랙 팬서> 속 가상 도시 ‘와칸다’를 들 수 있다. 보통의 서사에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 대치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와칸다에서 인간은 정교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변 자연환경과 함께 번영하며 삶을 유지 해나간다. 이원진 교수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솔라펑크 운동을 통해 낙관적 미래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펑크로 사고해야 한다
이지용 교수는 “인간은 이미 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함께 진화해왔다”며 “기술의 발달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술과 함께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펑크 장르는 인류가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며 현재를 돌아보고자 하는 일종의 도전이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넘어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사회 문제를 더욱 감각적으로 가깝게 느끼도록 한다. 펑크 장르는 기술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시대에 길라잡이와 같은 장르로서 자리하고 있다.

닐 스티븐슨의 사이버펑크 소설 '스노크래시' 표지.
ⓒyes24
영화 <블랙 팬서> 속 도시 '와칸다'의 모습.
ⓒ타임지
'2019 Solarpuck Art Competition'에서 3위를 수상한 DOUG BATISTA 작가의 작품.
ⓒ2019SolarpuckArtCompet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