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신혜 기자 (iriskim053@naver.com)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응용수학과 그 뿌리가 되는 순수수학

수학의 근원적 연구의 필요성 제기돼

지난달 27일 정부가 반도체, 인공지능 등을 다루는 수도권 대학 첨단학과 10곳의 입학정원을 817명 증원했다. 이에 따라 인문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물리학 등 기초학문인 자연과학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자연과학 분야 중에서도 ‘모든 과학의 언어’라고 불리는 수학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수학, 더하고 빼는 게 전부는 아니다
수학은 숫자와 기호를 사용해 대상과 대상이 서로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경북대 수학과 최하영 교수는 “수학은 숫자의 표현 방식이 아닌 그 안의 원리와 구조를 파악하는 언어”라고 설명했다. 수학은 자연과학의 발전은 물론 군사 기술, 사회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여하는 기초학문이다. 수학은 목적에 따라 크게 순수수학과 응용수학 두 갈래로 나뉜다. 순수수학이 수학 자체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응용수학은 수학의 모든 분야를 융합해 실생활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응용수학 
응용수학이란 △수리 경제학 △수리 언어학 △전산학 등으로 사회와 과학의 각 분야에서 널리 이용된다. 응용수학은 감염병 예방에 활용되기도 한다. ‘감염재생산지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도래했을 때, 확진자 한 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감염재생산지수가 1보다 작으면 감소세로, 1보다 크면 확산세로 판단한다. 감염재생산지수는 [감염전파율] × [평균 감염 기간]으로 계산되며 감염전파율은 [접촉자 수] ×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다. 예를 들어 확진자가 접촉한 사람이 2명이고 그 접촉자가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 0.2라면, 감염전파율은 0.4다. 이때 평균 감염 기간을 이틀이라고 가정하면, 감염재생산지수는 감염전파율인 0.4와 평균 감염 기간인 2를 곱해 0.8이 된다. 감염재생산지수가 1보다 작게 산출됐으므로 감염병 확산이 줄어드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우리 학교 수학과 최우철 교수는 “감염재생산지수의 수치에 따라 감염병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지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행 규모 예측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치료제 비축량 결정 등에도 활용된다. 이렇게 응용수학 분야에서 현실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낸 뒤, 다시 현실에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수리모델링’이라고 한다.

순수수학과 응용수학 관련 도서.사진 | 김신혜 기자 iriskim053@skkuw.com
순수수학과 응용수학 관련 도서.
사진 | 김신혜 기자 iriskim053@skkuw.com


순수수학, 꾸준한 연구의 필요성을 말하다
순수수학은 응용수학의 뿌리가 되는 학문이다. 순수수학은 △기하학 △대수학 △위상수학 △해석학의 네 가지 분야로 이뤄져 있다. 기하학은 도형의 모양과 크기 등을 다루며, 대수학은 문자와 식을 다룬다. 해석학은 대수학과 기하학 등 다른 분야를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다. 대표적인 해석학에는 미분, 적분 등이 있다. 미분의 경우, 운동하는 물체의 순간적인 속도 등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순수수학의 미분 방정식이 활용되는 예시로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레이싱게임에서 달리는 자동차에 의해 날리는 먼지, 타오르는 불꽃 등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통해 자세히 묘사된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은 물리학자 클로드 나비에와 수학자 조지 스토크스가 세운 방정식이다. 이는 고체 물질의 가속도를 구하는 뉴턴의 운동 제2법칙(힘 = 질량 × 가속도)을 변형해 액체와 기체, 즉 유체의 운동을 파악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를 통해 1초 간격으로 변화하는 파도의 모습, 강풍이 친 후 높아지는 파도의 정도 등 변수에 따른 변화를 정확히 예측해 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은 해를 구하지 못한 난제다. 만약 이 방정식의 해를 구해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정밀한 애니메이션 연출이 가능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순수수학의 연구가 필요하다. 최하영 교수는 “수학과 학생 중에서도 세부 전공을 정할 때 순수수학보다 응용수학 분야를 희망하는 학생이 많다”며 “응용수학에서 기본이 되는 원리들은 모두 순수수학에서 나온 것이기에 수학이란 학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수학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수학계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공시에 따르면 10년간 충청권 내 재학생이 5,000명 이상인 일반대학 24곳 중 5곳에서 수학과가 폐과됐다. 지방대학에서의 수학과 폐지는 수학 인재 양성에 영향을 끼친다. 최하영 교수는 “학생들에게는 취업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화두다 보니, 기초학문인 수학의 연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 학생들이 수학과 진학을 꺼린다”고 밝혔다. 한양대 에리카 수리데이터사이언스학과 정인재 씨는 “연구원이나 교직 외의 분야로 취업하기 위해 수학과 내에서도 복수전공은 필수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낮은 관심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후학 양성을 위한 수학계의 교원 및 교수 자리가 한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산업 수학 등 다양한 연구를 도맡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직원 규모는 총 80명으로 2019년 기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직원은 164명, 한국행정연구원의 직원은 125명인 것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러나 최우철 교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관련된 수학적 모델링과 알고리즘들을 이론에 기반해 정밀히 분석하는 등 타 학문과의 적극적인 융합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수학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최하영 교수는 “금융위기, 암 치료 등 다양한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 수학이 떠오르고 실제 결실이 이뤄지고 있어, 오히려 최근에는 수학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우철 교수는 “최신 이슈와 장기적인 연구수요를 예측하고 관련된 로드맵을 학문후속세대에게 제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전했다.